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여자들의 머릿속에 우렁각시가 있다

권영상 2013. 3. 1. 14:14

 

여자들의 머릿속에 우렁각시가 있다

권영상

 

 

 

 

내가 다니던 직장에 우렁각시가 있었다. 키도 크고 미모도 뛰어난, 그야말로 남성들이 바라는 긴 머리 국어교사였다. 당시만 해도 성공한 남성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여자대학을 나왔다. 눈빛이 맑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순수했다. 그녀는 결혼 전부터 우렁각시였다.

어느 날, 우렁각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조문도 조문이지만 무엇보다 잘 생기고 수려한 우렁각시의 남편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만 해도 내 나이 30대였으니까 나는 좀 유치했다. 그날 밤, 빈소에서 나는 우렁각시가 소개해주는 남편을 만났다. 나는 그분이 내미는 손을 잡으며 적잖이 실망했다. 우렁각시와 달리 작달막한 키의, 까뭇까뭇한 얼굴의 사내였다. 못 생겨도 그렇게 못 생길 수 없었다. 마구 구겨놓은 종이 같았다.

 

 

 

나는 나중 직장으로 돌아온 우렁각시에게 이런저런 말끝에 “두 분 연애결혼 하셨나요?” 하고 물어봤다. 서로 판이하게 생긴 부부니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게 궁금했다. 궁금하면 못 참는 게 내 성미다.

대답은 이랬다.

우렁각시가 대학 3학년 때다. 어느 날 덕수궁 길을 걷다가 담장 밑에 쭈그려 앉은 사내를 발견했다. 그는 배고파 걸을 수조차 없는 시골에서 상경한 사내였다. 우렁각시는 그 가엾은 사내 곁을 지나칠 수 없어 점심을 사 먹였고, 마침내 자신의 집에 데려와 살게 했다. 그녀의 집은 유복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들여온 사내에겐 홀어머니가 있었다. 우렁각시는 부모의 허락을 받고 중학교 밖에 안 나온 사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우선 고등학교에 진학시켰다. 그리고 우렁각시는 직장을 얻어 사내를 다시 대학에 진학시킨다. 그 다음 우렁각시가 해야 할 임무는 무얼까? 뻔하다. 행정고시를 보게 하는 일이다. 고시에 합격한 뒤 군에 입대한 사내는 남자가 되어 제대를 했다. 그 다음 남은 일은 무언가. 물어볼 것도 없이 뻔하다.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도 없고 줄도 없는 그 사내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홀시어머니를 모시며 아이를 둘 낳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스토리 같지 않은가. 그러나 이 일은 사실이다. 이런 우렁각시 같은 여인들은 실은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으로 평강공주가 있다. 왕의 딸인 평강공주가 아버지의 뜻을 기어이 어기고 낮은 신분의 나무꾼과 결혼하여 그를 훌륭한 장수로 만들어 낸다. 신라의 선화공주 이야기도 그렇다. 마나 캐어먹는 가난한 서동을 따라 백제로 들어가 자신의 백그라운드를 이용해 서동을 무왕이라는 자리에 앉힌다. 고전소설 <박부인전>의 비범한 박부인 역시 어릿배기 같은 남편 이시백을 가르쳐 장원으로 과거급제를 시키고, 임금의 신임 받는 판서자리에 앉힌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나라 문학이나 민담 속에 수없이 많다. 춘향전에도 그런 요소가 있다. 예쁘기로 이름난 절세의 춘향은 사랑과 정절이라는 우회적 방식으로 이몽룡을 과거에 장원급제시킨다. 그리고 자신을 보기 좋게, 극적으로 살려내게 하여 미인의 콧대를 한껏 드높인다.

 

 

이런 이야기들이 오래오래 우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 여성들의 심리에 그런, 남편을 출세시키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근히 그런 걸 바라는 남성들의 기대심리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왜 여성들에게 그런 심리가 숨어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 통로가 꽉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 사회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통로가 있다면 오직 기녀가 되는 길뿐이다. 그들은 상층 신분의 남성들과 교류함으로서 당시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지식과 문화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절을 강요받는 여염집 여인으로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여성들은 못난 남편을 가르친다. 그리고 세속적으로 성공시킨다. 여성이라고 다 그런가? 아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여성들은 자신보다 우수한 유전자에 집착한다. 그런 까닭에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남성과 결혼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렇다면 저만 못한 남성과 혼인을 하는 이 여성들은 누구일까. 이른바 조선의 잘난 여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남성을 선택한다. 남성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상의 모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줏대 높은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시, 남성을 평가하는 보편적인 수준 이하의 남성을 보란 듯이 선택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방식으로 남편을 가르쳐 번듯하게 키워낸다. 그러는 여성들의 내면에 ‘우렁각시’ 본능이 있다.

 

 

어떤 사람이, 논에 물을 보러 가니까, 삽으로 논 수멍을 콱 찍으면서

“이 농사 져다 누구하고 먹나?”

하니까네

“나하고 먹지 누구하고 먹어.”

그래 또 이상해서 또 한 번 콱 찍으면서

“이 농사 져다 누구하고 먹나?”

하니까네

“나하고 먹지 누구하고 먹어.”

 

 

 

이렇게 시작하는 게 우리가 모두 잘 아는 ‘우렁각시’ 이야기다. 달리 ‘달팽이 각시’라고도 한다. 도대체 이 말소리가 어디서 나오나 하고 찾아보니 논두렁에 있는 우렁이(달팽이)한테서 나오더라는 거다. 이걸 집에 가져와 물두멍에 넣어둔다.

근데 밖에 나갔다 와 보니 난데없는 밥상이 방안에 떡 차려져 있다. 볼수록 참 좋은 장면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밥상이 떡 차려져 있다는 건 황홀한 일이다. 목숨을 쥐락펴락 하는 것이 밥상 아닌가. 논에 물을 보러간 ‘어떤 사람’이란 여자가 없어 장가 못 가는 가난한 농촌총각이다. 여자의 손이 닿았을 법한 이 난데없는 밥상에 노총각 입이 쩍 벌어졌겠다. 아, 한두 번이 아니고 하루 이틀이 아니다. 밖에 나갔다 와 보면 밥상이 떡 차려져 있고, 나갔다 와 보면 또 떡 차려져 있고, 또 차려져 있고, 또 차려져 있고…….

 

 

이 환장할 만큼 즐거운 노릇 때문에 농사꾼은 몸을 숨겨 몰래 부엌을 엿보았다. 그런데 아, 글씨 물두멍에 넣어둔 달팽이 속에서 여자가 나오는 게 아닌가. 컴커무레한 부엌이 환해질 정도로 잘 생긴 여자가. 우렁이 속에서 짠, 하고 나온 이 멋진 여자는 대체 누구인고? 하여튼 보통 여자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사람도 아니고 우렁이 몸에서 나왔으니까. 우렁이가 뭐길래? 여성의 음부를 상징하는 놈이다. 물에서도 살고 땅에서도 사는 우렁이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나온 그녀는 아비가 물을 다스리는 신이거나 왕이다. 그렇다면 우렁각시는 자연스레 신분이 공주다. 평강공주나 선화공주처럼, 아니 춘향이처럼 기가 막히게 잘 생긴.

 

 

우렁각시는 그런 신분의 이른바 잘난 여인이다. 그런 여인이 이 세상 뭇 남성중에서도 하필이면 가난한 농사꾼을 찍다? 그게 스토리를 만들려고 그런 게 아니다. 다 이유가 있다. 상대가 똑똑한 남자라면 자신의 의지대로 남자를 키워낼 수 없다. 고집 세고 주체적이며 제도 개혁 의지가 강한 평강공주가 당대의 내로라하는 남성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좀 데데하고 신분이 낮은 사내여야 여자의 말에 고분고분 순종한다. 여성 억압사회의 폐해에 신물이 난 깨어있는 여성들이 여성 우위를 행사할 길은 그때만 해도 그뿐이었다.

 

 

 

그런데 어리버리한 남자들이 판을 치는 사회엔 꼭 감초들이 있다. 예쁜 여자 보면 못 참는 자들이다. <우렁각시>가 아닌 <달팽이색씨> 민담을 보면 아무데 나라 아무 임금이란 자가 우렁각시한테 그만 홀딱 반한다. 임금이라면 백성들의 재물도 다 제 것이라 여기고, 백성들의 목숨도 다 제 것이라 여긴다. 그런 자가 당대의 임금였으니 당연히 우렁각시도 빼앗아다 제 것으로 삼으려 했다. 이게 그 무렵 남성판 사회다.

그러나 아무리 임금이 무소불위라 해도 잘난 우렁각시들을 당해낼 수는 없다. 평강왕도 제 딸의 고집은 꺾지 못했다. 이들의 신념을 이길 자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아무 나라 아무 임금인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나? 당연히 없다.

 

 

 

우렁각시를 궁궐까지는 잡아 왔지만 그녀의 마음은 빼앗지 못한다. 그녀의 마음을 빼앗으려는 임금한테 우렁각시 왈,

“거지 잔치를 한 서너너덧 달 해 주면 거시기할 거라.”고 한다.

거시기라니! 거시기가 뭔가? 아, 그거도 모르는감? 거시기가 거시기지. 거시기 해 줄 테니깐 거지 잔치를 해 달라는 거다. 웬 거지잔치? 우렁각시는 저 없는 동안 농사꾼 남편이 거지가 되어 동냥질을 다닐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임금과 거시기 하기 전에 우선 남편을 한번 만나겠다는 음모다. 이걸 모르는 임금은 옳다쿠나, 그쯤이야 쉽지, 하고 대뜸 거지 잔치를 열어준다.

잔치의 끝날에 우렁각시는 쥐털 벙거지에 새털 옷을 입고 온 거지를 만났는데, 그가 바로 꿈에 그리던 가난뱅이 남편이다. 우렁각시는 남편 만난 게 반가워 실성한듯이 웃자, 속내를 모르는 임금은 우렁각시 남편의 쥐털 벙거지를 빼앗아 쓰고 춤을 추며 웃겨 보인다. 그러나 우렁각시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 그럴 찰나에

 

 

“아, 저기 저 놈 잡아내라.”

호통치며 우렁각시 임금을 내쫓고 제 거지 남편을 임금 자리에 떡 올린다.

참으로 숨 가쁘고 숨 가쁜 정변이다.

이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어리벙벙할 만큼 놀랄 쿠데타인가. 마누라 덕에 가난한 거지에서 한 순간에 임금으로 에스칼레이트 되다니. 어리석은 남자들이여! 우렁각시가 어찌 부럽지 아니한가. 단번에 임금을 만들어 주는 마누라를 싫어할 남자 어디 있을까. 그러고 보니 참 그렇다. 우리나라 지금의 안방극장 주 스토리가 이거다. 회장님 딸이나 손녀가 자신의 사랑하는 남자를 회장님 후계자로 만들어주는 이야기. 우렁각시는 지금도 우리 곁에 이처럼 버젓이 살아있다.

꼭 잘난 여자 아닌 보통 여자들의 내면에도 우렁각시는 숨어 있다. 여자가 집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면 그는 분명 우렁각시다. 우렁각시들은 대개 남편에게 자기 뜻에 맞는 옷을 입히고, 자기 뜻에 맞게 관리하려 한다. 왜냐? 자신의 그런 뜻을 통해 남편을 성공시켜 보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자, 노총각들! 강남역으로 달려나가 우렁각시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떤가. 우렁각시의 헌신적인 성은을 입어보고 싶지 않은가. 그러려면 꼭 하나 지킬 것이 있다네. 그녀에게 고분고분해야 한다는 사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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