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센트 반 고흐의 그늘
권영상
지난해 가을, 정확히는 9월 2일이다.
벼르고 별러 동유럽 3국, 체코, 폴란드, 오스트리아 여행을 떠났다. 13시간이라는 비행시간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에 두고 있던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구매했다. 고흐가 그의 동생 테오와 생전에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서간글이다.
그림을 모르는 이들도 잘 아는 화가가 빈센트 반 고흐다. 그 유명한 귀가 잘린 ‘자화상’이라든가 ‘해바라기’, ‘밤의 카페’, ‘감자 먹는 사람들’, 마지막 오베르 시절에 그린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통해 대부분 사람들은 그와 친숙하다.
고흐는 곤경에 시달리면서도 그림을 향한 불타는 열정만큼은 식지 않았고, 그렇게 그린 그의 그림은 그의 사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경매되는 그의 그림 값만 봐도 인류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만하다.
그는 1880년 27살에 그림을 시작하여 1890년까지 10년을 그렸다. 단순히 그림을 그렸다기보다 ‘그림에 미쳤다’라는 표현이 옳겠다.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남기고 그는 37살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편지를 읽으면서 그의 그림 작업 이면에 숨겨진 인간적인 삶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이 글이, 감추고 싶었을지 모를 그의 그늘을 들추는 것 같아 우선 고흐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그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
사랑
1881년 11월 3일 자 편지다.
‘올여름 나는 케이를 사랑하게 되었다.’로 시작되는 편지를 동생 테오에게 보낸다.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케이에게 빠져 있는지를 말한다.
고흐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절대 절대 안 된다’ 였다.
케이는 스트리커 숙부의 딸이다.
이 편지에는 담겨 있지 않지만, 케이는, 그러니까 빈센트 고흐의 사촌으로 35살의 미망인이다. 그녀에겐 딸도 있었다. 그때 고흐는 28살.
자신을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어머니나 아버지, 숙부, 숙모, 그리고 또 한 명의 코르 숙부, 코르 숙부를 빼고 모두 고흐의 청혼에 반대했다.
계속해서 그녀를 사랑하는 것
마침내 그녀도 나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까지
그녀가 사라질수록 그녀는 더 자주 나타난다.
식구들이 반대할수록 케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격렬해진다.
사실 고흐는 그 나이 되도록 뭐 하나 되는 게 없었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신학교를 다녔지만 안 맞았고, 고향을 떠나 화상의 점원도 해 보고, 시골 마을로 가 전도사를 하거나 교사가 되어 보지만 모두 안 맞았다. 완고한 아버지와의 갈등은 갈수록 심각했다.
그 무렵 고흐에겐 테오 말고는 어디 기댈만한 곳이 없었다.
그가 자신보다 나이 많은 이혼녀, 그것도 자식이 있는 연상의 케이를 사랑하려 한 데엔, 결혼을 통해 뭐 하나 되는 게 없는 인생의 방향을 찾아보고 싶었던 거다.
‘신이시여, 고맙습니다. 저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뭔가 열릴지도 모를, 자신의 앞길에 대한 기대감과 행복감에 고흐는 취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책에 빠진다.
만약에 자신이 부자였다면 케이와 숙부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고독해진다. ‘사랑은 말이다.’ 고흐가 테오의 말을 바로잡는다.
네가 말한 딸기밭에서 딸기를 따는 일과는 다르다. 누구에게는 가볍고 달콤한 것이 사랑이겠지만 누구에게는 고통스럽고 너무나 힘든 일임을 밝힌다.
케이와의 사랑도 결국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어느 겨울,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임신한 여자 시엔을 거리에서 만나지만 그와의 사랑도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는 마음 둘 곳 없는 암울한 현실을 사랑으로 건너보려 하지만 사랑은 자꾸 멀어져간다.
돈
‘그런데 이제 솔직히 말해다오. 왜 내 그림은 팔리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그림을 팔 수 있을까. 돈을 좀 벌었으면 좋겠다. 사랑을 하려고 해도 경비가 필요하다.’
1881년 11월 10일 자 편지에 답답한 심경을 테오에게 토로한다.
그 후 3년 뒤 수채화와 펜 데생 몇 점을 테오에게 보내며 다시 그 말을 꺼낸다.
‘너도 그림을 팔아보려는 노력을 더 확실히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내 그림을 단 한 점도 팔지 못했으니 말이다.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사실 너는 팔아보려는 노력도 안 하지 않았니? 이제 솔직한 심정을 말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는 더 이상 못 견디겠다.’
고흐의 돈에 대한 절박함이 피부로 느껴진다.
편지로 간신히 이어지고 있는 이들 형제 사이가 깨뜨려질까 아슬아슬하다. 테오의 마음이 돌아서면 어쩌려고 이러는지, 하다가도 그의 딱한 사정을 가늠해 본다.
고흐의 그림은 살아생전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
그 10년 동안 동생 테오는 화구상의 점원을 하며 형의 생활비를 매달 보냈다. 화구를 살 비용이나 집세도 물론 보냈다. 그뿐 아니다. 팔아달라고 동생에게 보내는 자신의 그림조차 우송료가 없어 수취인 부담으로 보내야 했다. 그런 형편에 ‘너는 팔아보려고 노력도 안 하지 않았니?’라고 말할 때 당황스러웠다.
고흐의 내면은 복잡하다.
케이와의 사랑이 실패한 것도 그는 돈 때문이라 생각했다.
‘아마 내가 1년에 적어도 1,000길더는 벌어야 그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을’ 것이라 여길 정도로 그에게는 그림 말고 사랑을 위해서도 돈이 필요했다. 또한 동생으로부터 매달 받는 이 생활비를 빚이라 생각했고, 이 빚을 갚아야 한다는 강박이 그에게 있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그림이고, 그림이 팔려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그의 그림값이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별이 빛나는 밤’이 경매에 나온다면 3억에서 5억 달러는 될 거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무렵 고흐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너에게 무거운 짐을 맡겨 미안하다.’
고흐는 자주 그 말을 했다.
사람들의 눈
고흐는 사람들이 자신을 미치광이로 보는 것을 두려워했다.
<여기까지. 책을 반도 못 읽은 상태입니다. 나머지는 언제쯤 다 읽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 읽게 되면 그때 다시 이 글을 꺼내어 완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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