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내게 온 백자사발

권영상 2026. 3. 5. 11:28

 

내게 온 백자사발

권영상

 

 

반다지 속에서 종이에 싸둔 백자사발과 대접 한 벌이 나왔다.

나는 잠시 이것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느라 머뭇거렸다. 기억에 없다. 이것이 내게 왔다면 큰조카의 손을 거쳤을 것이다. 큰조카는 모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할머니가 쓰시던 유품 몇 가지를 골라 할머니의 막내 아들인 내게 주었다.

놋그릇 두 벌과 통나무를 깎아 만든 함지박을 준 것이 기억난다. 백자사발 기억이 안 난다면 그들과 함께 묻어오느라 별달리 기억을 못한 모양이다. 그걸 여기 반다지 속에 오래 넣어 두고 잊은 까닭은 ‘다시 쓸 수도 없는 오래된 것’으로 치부한 때문이겠다.

 

 

그런데 부딪히지 말라고 여기저기 구겨 넣은 종이를 벗겨내고 보니, 볼수록 품위가 있다. 깨끗이 씻어 뽀독뽀독 닦은 뒤 책상위에 놓아 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아래에서 올려다보아도 백자가 지닌 격조가 있다. 웅숭깊은 그릇의 깊이며 둥근 곡선이 뭐랄까 기하학적 조형성을 가지고 있다 해야 하나. 막사발과는 분명 다른 우아함이 있었다.

해마다 봄이 다 기울어갈 때쯤이면 어머니는 식기로 쓰시던 놋그릇을 거두어 그릇장에 넣으시고, 사발그릇을 내놓으셨다. 그때의 사발은 이렇게 격조 있지 않았다. 물레가 돌아간 자국이 나 있었고, 그릇 바깥 면에 목숨 수자나, 복 복자 아니면 쌍희자가 쓰여있거나 그릇 전을 따라 푸른색 테가 한 줄 아니면 두 줄 둘러쳐져 있었다. 그냥 보통 민가에서 흔하게 보던 그런 사발그릇이었다.

 

 

근데 이건 내가 얕보던 그들과는 분명 달랐다.

그릇의 두께 역시 좀 두툼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볼륨이 있고, 생각이 깊은 사람의 마음처럼 그릇 안이 넓고 우묵하다. 무엇보다 표면에 철분이나 미세한 빗금이랄까 그런 흠결이라도 하나 있을 법 한데, 오직 희고 부드럽고 정갈하여 고결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사발을 들고 이번엔 식탁 위에 놓아보았다.

먼 시간을 건너온 아파트살이의 식탁과도 그리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린다. 이 사발에 고향 어머니가 방금 끓여낸 칼국수나 만둣국 한 그릇을 담아 내놓으신다 해도 전혀 시간의 격차를 느낄 수 없을 만큼 그릇은 편안하고 조화로워 보였다.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앞에 놓인 사발을 본다.

식탁 대신 간소한 밥상 앞에 앉으셨을 그 옛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분들은 땅에서 태어나 평생 농사일을 하시며 사신 분들이다.

한시도 편히 쉬지 못하셨으면서도 때로는 마당가 오동나무 그늘에 자리를 펴고 앉아 이 그릇으로 점심을 드시기도 하셨겠다.

어쩌면 그릇을 아끼신 나머지 귀한 손님 대접용으로 쓰셨을지 모른다.

우리 집에 오시는 귀한 손님이라면 서로 어려워하시던 부모님의 사돈분들이시다. 여름철이거나 한가하실 때면 그분들은 모시 한복을 깨끗이 입고 찾아오시곤 했다. 사방으로 문을 열어놓은 사랑방에서 마주 절을 하시고, 점심을 드시고, 마당가 오동나무 좋은 그늘에 나와 앉으셔서 부채를 부치시다 오이냉국이나 수박화채를 드셨는데, 어쩌면 이 백자사발들이 그때에 쓰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백자사발을 이리저리 돌려보는데, 그릇 밑에 음각으로 찍힌 작은 글자가 눈에 띄었다. 커다란 돋보기를 가져와 들여다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MADE IN JAPAN

나는 그릇을 떨어뜨릴 뻔 했다.

내려놓을 수도 들어 올릴 수도 없는 뜨거운 불덩이를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껏 일본의 어느 곳에서 생산된 백자사발을 예찬한 셈이었다.

여기까지 쓴 이 글을 버려야할까 말아야할까, 나는 망설였다.

 

 

아버지는 1907년에 태어나셨다. 서울과는 먼 동해안의 조그마한 마을 농가에서 자라 일제가 물러갈 때쯤에 마흔이 되신 분이다. 그 당시 생활에 필요한 그릇이라면 당연히 읍내시장에서 사다 쓰셨을 것이다. 농사를 짓는 분이셨으니 아버지가 친일을 하자고 이 그릇을 사셨을 리는 만무하다.

나는 어딘가 잘 보이는 곳에 얹어두고, 아버지를 생각하려 하던 마음을 거두어 들였다. 그릇을 본디 있던 반다지에 넣고 문을 닫았다.

‘아니, 이건 부모님 손길이 오래도록 밴 유품인데.’

나는 방안을 서성이다가 다시 반다지를 열었다.

백자사발을 들어 잘 보이는 서가 빈자리에 조심스레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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