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사는 앞을 보게 한다
권영상
지금이 3월 초다.
예년 같다면 3월 중순 무렵에 온상을 만들어 모종할 씨앗을 넣고, 한겨울 묵혀두었던 밭에 거름을 내고, 밭을 갈고, 29일쯤 감자 씨를 심어야 한다.
아직 먼 것 같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늦다.
종자만도 가까이서 구할 수 있는 걸 하루 품을 들여 먼 종로 5가 종묘 가게로 나가야 한다. 씨앗도 유행을 타는 것이 있어 잠깐 때를 놓치면 구할 수 없다.
인디언 속담에 씨 뿌릴 때 이야기를 즐겨하는 사람과는 가까이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씨 뿌리기 전에도 해당하고, 씨 뿌린 뒤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말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적기를 놓친다는 건 사실이다. 13년간 텃밭 농사를 지으며 얻은 것이 있다.
‘농사란 적기와의 싸움이라 때를 놓치면 다 잃는다.’
봄이면 해마다 텃밭에 심어온 것들이 있다.
감자, 강낭콩, 토마토, 고추, 그리고 채소류다. 이런 작물들은 필수 작물이다. 날씨가 좋든 안 좋든, 재배하는 재미가 있든 없든, 소득이 높든 적든 꼭 필요한 작물이니 꼭 심어야 한다.
그 말고 부수적인 작물들, 이를테면 재배가 흥미로운 작물도 있어야 농사짓는 재미가 있다.
해마다 선택해 온 흥미로운 작물들이 있다. 어디서도 재배하는 걸 본 적 없는 강화 순무다. 히카마라고 멕시코 감자도 씨를 구해 심어본 적이 있다. 뿌리가 누에를 닮았다는 초석잠부터 인터넷에도 뜨지 않는 너무나 낯선 보라마도 경험해 봤다.
지난해 가장 흥미로웠던 작물은 파프리카다. 노랑, 빨강, 주황.
노지 재배가 가능할까? 하고 해마다 망설였지만 그걸 키우면서 그 예쁜 색깔에 놀라 나는 수없이 탄성을 질렀다.
불행하게도 장마철에 탄저병이 텃밭에 들어왔다. 단 한 번의 수확으로 파프리카는 끝났다. 그러나 올해 다시 도전해 보려 한다. 문제는 노지에서 기른다는 점과 기습적인 탄저병을 어떻게 농약 없이 극복해 내느냐다.
파프리카 외에 올해 도전해 보려는 작물이 또 있다.
완두콩과 루꼴라다. 이건 챗봇을 통해 얻은 정보다.
두 작물 모두 3월에 파종한다. 챗봇이 순차 재배를 권했다. 순차 재배가 무슨 말이냐고 묻자, 그가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일시에 파종하면 수확 기간이 짧게 끝난다는 거다. 그러나 보름 간격을 두고 파종하면 순차적으로 신선한 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데 그게 순차 재배란다.
만약 순차 재배를 한다면 지주대를 타며 꽃피울 완두콩 꽃을 오래 감상할 수 있어 좋고, 완두콩 맛을 오래 즐길 수 있어 좋겠다.
루꼴라는 채소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잎이 아니라 줄기를 먹는 채소라는 것만 알고 있다. 이걸 심어보려면 종묘 가게를 돌아다녀야 한다. 하루 날을 얻어 양재동 꽃시장을 찾아 씨앗도 구하고 석회유황합제도 좀 구해야겠다. 석회유황합제 역시 챗봇이 알려준 유기농 약제다. 대추, 감, 자두 등의 열매 속을 파고드는 벌레에 대한 방제다. 해마다 대추가 잘 열리지만 이들 벌레 피해로 다 잃고 만다. 농약을 치지 않으려다 보니 대추 차지는 사람이 아니라 벌레다.
우선 대추나무가 시급하다.
양재동 꽃시장에 석회유황합제가 없다면 백암 농협에 들러 약제를 사놓아야겠다.
이 정도 준비가 되면 올해 벌레 걱정은 크게 덜겠다.
대농이든 손바닥만 한 텃밭 농사든 농사는 다 똑같다. 보름 전, 아니면 한두 달 앞의 일을 보고 예비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내 생각이 자연히 한두 달 앞에 가 있다. 내 몸과 정신이 이만한 것도 그런 텃밭 농사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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