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강황 절편을 가을볕에 말리다

권영상 2025. 11. 12. 11:22

 

강황 절편을 가을볕에 말리다

권영상

 

 

어제 안성에 내려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늦가을 볕이 참 좋다.

지난 가을은 가을이어도 가을답지 않았다. 사흘도리로 짓궂게 비가 내렸다. 그것도 50 여일 가까이. 그러느라 9월과 10월이 온통 비로 얼룩졌다. 자고나면 배추와 무가 진무르고, 모과가 비에 지쳐 땅에 떨어졌다. 끝물고추 좀 따볼까 하고 기다리던 고춧대는 빗방울로 번지는 탄저병에 다 잃었다. 병충해는 왜 그리 극성이던지.

 

 

그렇다고 모두 다 잃은 건 아니다.

비가 많이 내리고, 기온이 높을수록 잘 자라는 작물이 있다. 생강과 강황이다. 이들은 아열대 작물이라 고온다습한 날씨를 즐긴다. 강황은 희고 두툼한 꽃까지 피웠고, 생강은 아지를 벌여가며 튼실하게 자랐다.

그러던 것이 지난번 내려왔을 땐 하룻밤 사이에 된서리를 맞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한순간에 딱 멈추었다. 가을을 누려볼 새도 없이 계절은 속절없이 갔다. 그 후, 보름 만에 급한 일을 싸들고 가을걷이를 위해 안성으로 내려왔다. 더는 가을걷이를 미룰 수 없었다.

 

 

점심을 대충 먹고, 삽을 들고 생강부터 캤다.

기대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작황이 좋다. 물론 강황도 나름대로 좋다.

생강은 캐는 대로 서울 지인들에게 나누어줄 걸 빼고 나머진 안성 이웃들과 나누었다. 그러고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수돗가에 매달려 절편을 만들 생강과 강황을 깨끗이 씻어 밤새도록 물기를 뺐다.

아침 일찍 일어나 뽀독해진 생강과 강황을 얇게 저며 절편을 만들었다.

청결한 늦가을 볕이 데크 위에 가득 내려 쌓인다.

볕이 탐나 아침 먹는 것도 잊고 저민 생강과 강황을 데크에 내다넌다. 서늘한 듯하면서도 건조한 바람마저 솔솔 불고, 볕은 간지럽도록 따갑다.

 

 

가을볕에 내다 넌 강황 절편의 속살이 붉다. 붉다기 보다 오렌지 빛이다. 그걸 겹치지 않게 쪽 널고, 돌아앉아 생강 저민 걸 골고루 편다. 그러고 또 돌아앉을 때다. 강황 절편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오렌지 빛이던 절편이 시시각각 다갈색으로 변한다. 그걸 뒤집으면 햇빛이 닿지 않은 쪽은 연한 오렌지 빛 그대로다. 내 눈을 놀라게 하는 또다른 빛이 있다. 절편의 하얀색 부분이 예쁜 연노랑으로 변하고 있다.

이건 빛의 잔치다. 가을 볕의 명암과 절편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향연이다. 강황 절편 속에 숨은 그 빛을 찾아내느라 정신을 팔다가 문득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까지 출판사에 보낼 등기가 있다. 보낼 곳이 파주 지역이라, 아침 9시 우체국이 문을 열기를 기다려 전화했다. 오늘 빠른 등기를 보내면 내일 그 지역에 도착할 수 있는지. 그걸 문의했다. 안내하는 분이 말했다.

일반적으로는 하루만에 갑니다. 그러나 사정에 따라 하루 더 걸릴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하루 만에 가면 가는 거지, 못 갈 수 있다는 말은 왜 사족처럼 붙여 말할까. 가을걷이가 급해 내려온 일이 나를 힘들게 한다. 기한을 맞추어야 하는 출판사 일도 중요하지만 한 해 동안 가꾼 작물 수확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부랴부랴 요기 백암 우체국으로 달려가 빠른 등기를 보내고, 길가에 내놓고 파는 옷들 중에서 일하기 좋은 따뜻한 겨울바지를 사들고 돌아왔다.

 

 

옆집 할머니가 내가 오는 기척을 알고 김치 냉장고가 ‘쎄게 안 돌아간다’며 좀 봐달라 한다. 지난번엔 텔레비전 리모컨이 말을 안 듣는다며 나를 불렀다.

나는 김치냉장고 온도를 낮추어 드리고 돌아 나왔다.

아내에게 문과 출신이라 삶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지청구를 늘상 듣던 나도 할머니 덕분에 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집에 들어오니 강황이며 생강 매트에 벌들이 대여섯 마리가 날아와 윙윙거린다. 절편이 말라 표면에 달큼한 당분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걸 어찌 알고 이 늦은 가을, 산 너머 과수원 아저씨네 꿀벌이 날아온 거다.

볕이 좋으니 벌들도 집을 벗어나고 싶겠다.

 

 

나도 방안 의자를 데크에 내다놓고 털썩 앉는다.

볕이 닿는 목덜미와 어깨가 따끈해진다.

건너편 산 참나무 숲엔 이쪽과는 달리 바람이 분다. 마른 참나무 잎 부딪는 소리가 사각사각 빗소리를 낸다. 요기 삼거리에선 이쪽 여섯 집 밖에 안 되는 마을 남자들이 모여 두런거린다. 목소만 들어도 안다. 크고 높고 동그란 목소리는 수원집 아저씨다. 그분 말에 맞장구치는 쇤 듯한 목소리는 길 건너 파란 지붕집 4촌인 우리 옆집 옆집 사람이다. 딸이 재작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또 한 분, 말이 좀 느린 분은 브라질서 봉제공장을 하다가 돌아온 분이다.

 

 

나는 그들의 지걸하는 소리를 들으며 강황 절편을 또 뒤집어 준다. 강황은 카레의 원료라고 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가루를 내어 밥솥에 쌀을 안칠 때 몇 숟갈 넣어 먹거나, 생강은 겨울동안 차를 끓여 마실 거다. 내가 손수 이들을 심고, 손수 절편을 만들어 말리고, 손수 생강차를 마셔보는 일이란 즐겁다.

늦은 가을 한낮, 아무 하는 일 없이 데크에 앉아 주변으로 지나가고 있는 가을을 보는 일이 그리 싫지 않다. 외롭거나 무료하거나 전혀 적적하지 않다.

다행히 살면서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을 겪는다. 요 짧은 가을볕이 아깝다는 것과 귀하다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는 호박오가리를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