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딸들에게 보내는 꽃 택배

권영상 2018. 12. 4. 19:50

딸들에게 보내는 꽃 택배

권영상


 


S에게 전화를 했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S는 내 오래된 제자다.

“시간 나거든 저녁이라도 한번 하자,”

내 말에 좋습니다, 할 것 같았던 그가 요즘은 좀 힘들다 했다. 그의 목소리에 미안해 하는 마음이 역력하다. 그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우리가 미처 소식을 못 전하고 살았던 석 달 사이에 고향에 계신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과수원을 하시는 그의 아버지. 한번도 만나뵌 적은 없지만 제자로부터 들어 만나뵌 거나 진배없는 구면인듯한 그의 아버지다.

그의 아버지는 아내가 둘이다. 딸만 여섯을 낳아 마음이 다급해진 아버지가 엄마를 옆에 두고, 이웃마을에 엄마 하나를 더 얻어놓고 사셨다.



그 아버지의 일곱째 자식인 S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그 일을 빼면, 아니 그 일조차도. 이쯤 나이에 와 생각하면 아버지는 나무랄 데 없는 분이다열심히 사과농사 지어 차별없이 자식들 똑 같이 공부시키셨고, 누구에게 정을 더 주고 말고 할 것 없이 공평하셨다.

상수도를 두고도, 뒷마당에 우물을 파 우물 주변에 미나리를 심고, 그곁에 버드나무를 두고, 여름이면 그 그늘에서 등목을 하셨다. 엄마는 물론, 여섯 딸들의 생일과 결혼 기념일을 위해 따로 꽃을 심어 가꾸는 땅을 두셨다. 거기엔 장미며 달리아, 해바라기, 붓꽃, 허브 종류는 물론 꽃선물 하기에 좋은 신종 외래 꽃까지.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들의 생일에 맞추어 당신이 직접 가꾼 꽃선물을 택배로 보내기 좋아하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언땅이 녹으면 그때부터 꽃씨 비닐 온상을 만든다. 두껍게 열을 올릴 거름을 넣고, 그 위에 손수 꽃씨를 넣고 키우고, 때 되면 꽃밭에 모종하고, 기르고 가꾸는 일은 모두 일 좋아하시는 아버지 몫이었다.

물론 또 한분의 엄마에게도 아들이 있다. S보다 4살 위인.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나가 직장을 얻어살지만 S보다 더 자주 아버지를 찾아뵙는다. S는 배다른 그 형도 아버지처럼 존경한다. 집안의 대소사를 그분과 상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네 아버님을 뵙고 싶었는데, 꼭 한 번.”

아버지 돌아가신지 두 달이나 됐다는 말에 내가 섭섭했다.

다른 분은 몰라도 그 분은 꼭 뵙고 싶었다. 늘 과수밭에 나가 봄이면 과수에 거름을 넣고, 전지를 하고, 과일마다 봉지를 씌우고 달마다 찾아오는 그 많은 딸들과 아들과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그분께 고개를 숙여 인사라도 한번 드리고 싶었다.

고향이 너무 멀어 알리기가 부담스러웠다지만 그래도 섭섭했다. 멀다면 멀기야 멀다. 지리산이 끝나가는 남녘이 S의 집이니까. 그건 또 그렇더라도 한 때 자식 키우는 일이 버거워 몰래 어두운 지리산을 찾아들어 석 달만에 홀연히 돌아나오셨다는, 3대째 내리 그곳에서 사신다는 그분과 그분의 거처가 몹시 궁금했다.



지금 S는 서울에서 하는 일이 있다. 연극무대 설치 작업이다. 그는 맨하튼에서 공부를 하고 왔다. 그의 전공은 미술 디자인이다. 귀국하면서 내게 멋진 명함을 디자인해줄 만큼 그는 나를 각별히 사랑한다. 그의 전공은 디자인이지만 문학에 더 기울어져 있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통화 끝에 그가 아버지 남기고 가신 과수원에 갤러리를 만들까 한다고 했다. 문득 복숭아꽃이 피고 사과가 익는 과원의 갤러리가 떠오른다. 나는 S의 꿈이 이루어지길 빈다. 아버지가 가족에게 바치던 축하꽃 택배도 어쩌면 그가 이어가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