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삶, 야마오 산세이의 시들
권영상
동짓날이 되면
우리는 사실 태양에 기대어
태양 덕분에 사는 존재란 걸 알게 된다.
이제 더는 어둡지 않다.
앞으로는 더 밝아질 뿐이다.
(중략)
메밀잣밤나무 한 그루에게 나는 말을 건다.
메밀잣밤나무여,
그대들과 우리들의 오늘은 진짜 좋은 날이다.
더는 어두워지지 않는 우리 모두에게
진짜로 좋은 날이다.
동짓날이 되면 해마다
지금이 가장 밑바닥이고 밑바닥까지 왔으니
이제 괜찮을 거란 걸 알게 된다.
야마오 산세이의 시 ‘동지’다.
동지는 겨울밤이 가장 긴 날이고, 긴 밤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겐 그날이 지나면 밤은 점점 짧아지는 날이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밤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날이 우리 생애의 가장 긴 밤으로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갈 곳 없는 바닥을 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어둠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점점 작아지는 어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머지않아 올 아침을 기다릴 수 있다. 아침이 다시 온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건 다시 살아난다는 뜻이며 기적이기도 하다.
동짓날 아침이 오면 한번 길게 기지개를 켜고, 다가올 봄에 뿌릴 씨앗을 골라놓고, 흙을 파고들지 못해 녹슬고 있는 쟁기를 한 번 잡아주어야 한다. 기나긴 밤은 동지에서 끝난다. 그러니 이날만큼 좋은 날은 없다.
두려워마라. 다 괜찮을 거다.
지난해 규슈 남부 가고시마현을 다녀왔다.
거기 사쓰마번 영주인 시마즈 가문이 만들었다는 정원 산간엔을 둘러보고 나올 때다. 바다 건너 저만큼에 서 있는 사쿠라지마 섬 높은 산봉우리에서 연기가 펑펑 솟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활화산이었다. 지금 폭발하지 않겠느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쭉 그래 왔다는 거다.
그 사쿠라지마 섬 먼 뒤편, 오키나와로 가는 열도에 아열대에 가까운 야쿠시마 섬이 있다.
도쿄에서 태어나고 거기서 대학을 다닌 야마오 산세이가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그 섬을 찾아가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거기서 아홉 자식을 낳고, 신령스럽기만 한 6천 살씩이나 먹은 조몬삼나무들과 거치른 바다와 바람과 나무와 바위의 정령들과 근방 사람들과 땅을 일구며 어울려 살았다.
“더는 못 가고 이쯤에서 돌아갑니다.”
나는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것처럼 이미 이 세상을 뜬 야마오 산세이를 향해 작별을 고했다. 내가 그에게로 다가갈 수 있는 거리는 여기까지였다.
그의 오두막집 마당엔 지금도 구아바나무가 잘 살고 있는지.
자주 물고기를 가져다주는 이웃집 어부에게
해거름 무렵에
때로는 이쪽에서 표고버섯을 주러 간다.
“원숭이가 먹고 남긴 표고버섯입니다만.”
사실
원숭이들은 표고버섯을 대단히 좋아하여
다 자라 먹을 때가 되면
한발 빨리 와서 먹는다.
그래도 작은 소쿠리 하나 정도는 먹고 남기는 것을 딸 수 있어
그것을 우리가 먹는다.
호화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지적인 것도 하나 없다.
그래도 물고기는 오고
원숭이도 조금은 우리 몫을 남겨준다.
돌아오는 길에 산을 우러러보니
거기에는 벌써 초승달이 곱게 떠 있었다.
야마오 산세이의 일상이 잘 드러나는 ‘초승달’이라는 시다. 시라기보다 그가 조용히 이야기하는 그의 삶의 자세에 대한 기록 같다. 그를 굳이 시인이라 해도 좋기는 하겠지만 그보다 그는 자연을 존중하며, 그것을 실천한 수행자에 가깝다. 이 한 권 밖에 없는 시집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에 수록된 글이 시로서의 숭고함을 갖는 까닭은 그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그 섬에 기대어 사는 미물이며 원숭이들까지 똑같이 공평한 이웃으로 대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는 이름있는 대학이거나 그 대학의 졸업장으로 세상에 나와 그 졸업장의 힘으로 산다는 게 싫었다. 그래서 대학도 다니다가 중도에 나왔다. 아내와 결혼한 뒤 도시를 떠나 몇 천 년을 살고 있는 조몬삼나무 곁 야쿠섬으로 왔다.
도시를 떠나 소박하게 사는 삶을 실천하는 그의 삶은 '월든의 숲'에서 오두막을 짓고 손수 강낭콩을 가꾸며 산 헨리 소로우의 삶과 매우 닮아있다.
야자잎 모자를 쓰고
바다를 본다.
사람들은 나아간다.
세계로 세계로
우주로 우주로 눈먼 쥐처럼 나아간다.
나는 반대로 물러난다.
나에게로 나에게로
흙으로 돌로 숲으로 물러난다.
야자잎 모자를 쓰고
바다를 본다.
오래도록 우리 모두의 고향인 바다를 본다.
다들 앞으로 나아갈 때 홀로 뒤로 물러서는 사람. 화려한 곳이 아닌 숲으로 물러나는 사람.
그는 지금 야자잎 모자를 쓰고 있다.
우습지 않은가. 어린아이처럼 야자잎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길을 걸어 나무를 만나고, 돌을 만나고, 벌목을 하느라 섬에 상처를 입히고 떠나간 옛 사람들의 족적을 만나고, 바다와 하늘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다. 원숭이가 먹고 남겨준 바나나를 먹으며 그가 가족과 함께 간 곳은 인도와 네팔이었다. 그는 거기서 돌아와 돌멩이 하나 나뭇가지 하나에도 고요히 신성이 깃들어 있음을 안다.
그의 세상을 대하는 수행의 자세가 아름답다.
그 때문일까.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를 열 때마다 그의 글에서 경건함을 느낀다.
누군들 무슨 시를 못 쓰겠는가.
문제는 진정한 삶이다.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입춘부를 쓰며 (1) | 2026.02.05 |
|---|---|
| 나는 기원한다, 아무 탈 없기를 (1) | 2026.02.01 |
| 바다가 보이는 학교 (1) | 2026.01.19 |
| 밤눈 (1) | 2026.01.15 |
| 주도권을 빼앗기다 (0) | 2026.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