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바다가 보이는 학교

권영상 2026. 1. 19. 15:19

 

바다가 보이는 학교

권영상

 

 

골목길을 걸어갈 때다.

누구네 집에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마녀 배달부 키키>이다. 이 집의 누군가가 ‘바다가 보이는 마을’을 꿈꾸며 이 곡을 치는지 모르겠다. 나는 한동안 멈추어 서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를 마치 어린 소년처럼 듣다가 발을 뗀다.

13살 키키는 마녀 수행을 위해 빗자루를 타고 보름달이 뜨는 밤 다른 마을로 떠난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코리코 마을이다. 그 마을 빵집 주인 구쵸키 아줌마의 도움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능력인 하늘을 나는 마법으로 배달을 시작한다. 키키가 하늘을 날아오를 때마다 저 멀리 바다는 풍경처럼 드러난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오르면 날고 싶어진다.

 

 

꽤 오래전이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다.

발령이 그 학교로 났으니 나는 그 학교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찾아갔다. 학교로 가는 길은 도심에서 멀지 않은 구불구불 가파르게 오르는 산길이었다. 3월 봄. 잎도 피지 않은 아카시나무와 어린 참나무 숲 사이로 난 좁은 자동차 길을 따라 해발 150미터쯤 되는 산언덕에 올랐을 때 학교가 나타났다.

 

 

그 학교 교문에 들어서며 나는 깜짝 놀랐다.

코 밑까지 다가온 동해가 눈앞에 활짝 펼쳐졌다. 바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학교가 마치 구름 위에 둥실 떠 있는 섬 같았다.

아이들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아침마다 구름을 기어올라 학교로 올까. 하루종일 바다만 바라보며 살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렇게 높은 산을 매일 출근하고 퇴근할 수 있을까. 낭만적인 생각보다 그게 내 앞에 닥친 현실이었다.

미혼인 나는 그날, 학교 근처에 있는 관사에서 살기로 했다. 관사엔 연세 많은 부부가 살았고, 몇 개의 빈방을 채우기 위해 학교가 내게 그 방을 주선해 주었다. 밥은 그 인근 가정집에서 해결했다.

봄이 되면 학교는 아침마다 자옥히 해무에 잠겼다. 그 해무를 뚫고 등교하느라 산비탈을 걸어 올라온 아이들은 숨이 턱에 차 헐떡였고, 그 아이들 눈썹과 머리칼엔 해무가 이슬처럼 뽀얗게 맺혀 있었다.

 

 

3교시가 끝날 쯤 교실 창문을 열면 해무가 사라진 자리에 동해가 파랗게 드러났다. 나는 아이들과 창가에 서서 깨끗한 햇빛에 파랗게 빛나는 바다를 내려다보곤 했다. 바다는 왜 저렇게 넓고 크고 빛나는지.

관사 주변은 온통 파란 밀밭이었다.

그 밀밭 끝은 가파른 벼랑이었다. 굴러떨어지면 여지없이 바닷물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은.

그 바닷가 마을이 우리 학교의 학구였다. 아이들 아버지는 대부분 배를 탔다. 근해 아니면 대화퇴, 아니면 그보다 먼 원양으로 가는.

 

 

해무도 끝나고 아카시꽃 향기가 밀려드는 5월 어느 밤이었다.

나를 찾는 목소리에 나가 보니 어머니 세 분이 오셨다.

관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시는 우리 반 윤철이 미경이 순지 어머니였다.

“선생님이 심심해 하실까봐 동무해 드리러 왔어요.”

한 분은 아기를 업고, 한 분은 미역나물 반찬을 해 들고, 한 분은 허리가 아프다며 방석을 껴안고. 어떤 때는 세 분이, 어떤 때는 다섯 분이 ‘선생님이 심심해 할까봐’ 찾아오셔서 고단하게 사시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한 분은 파수대 일을 하셨고, 한 분은 손녀를 돌보는 할머니셨고, 한 분은 어판장에서 물고기 손질을 하셨고, 한 분은 다리를 저는 분이셨다. 그리고 한 분은 아기 아빠가 먼바다에 조업하러 가신 이웃 반 어머니셨다. 모두들 이 산비탈 골목에 대문을 마주하고 사는 분들이다.

 

 

“산비탈이 사는 정도의 높이에요.”

그분들은 그렇게 말했다.

생존의 높이는 대부분 가파른 산비탈의 높이와 닿아있었다.

나는 일요일이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연을 만들어 밀밭에 나가 띄웠다. 연은 바다가 보이는 하늘로 즐겁게 날아올랐고, 그 얼레를 잡은 나나 아이들도 연처럼 날아 어디 먼 데로 가고 싶었다. 그때쯤이면 엄마들도 올라오셨다.

“아, 5월에 뭔 연이래요!”
“선생님도 참. 뭘 모르시네.”

하시지만 손뼉을 치며 좋아하셨다.

어쩌면 그분들도 연처럼 꿈꾸는 곳으로 날아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들에겐 이 산비탈을 벗어나고 싶은 마법이 필요했다.

 

 

13살 키키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마법. 그러나 그것도 19살이 되면서 마법은 풀린다. 날아오르던 빗자루가 말을 안 듣고 자꾸 아래로 떨어진다. 키키는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 현실로 돌아온다.

비현실같이 세상을 자옥하게 덮던 해무가 한순간 햇빛에 사라지고 다시 산비탈의 현실이 눈에 역력히 들어오는 3교시가 끝날 무렵.

우리는 또 창가에 서서 해무가 사라진 자리에 드러나는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산언덕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숨 막힐 정도로 크다.

“저렇게 큰 바다는 누가 만들었을까?”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저게 고래가 꿈 꾸어온 세상이래.”

누군가가 대답했다.

“아, 고래가.”

 

 

그러면서 아이들은 천천히 4교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 학교에 내가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가 있었다면 아이들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이쯤에서 그의 <마녀 배달부 키키>의 예쁜 피아노곡이 울려 나온다면 참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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