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이 꽃 피기를 기다리며
권영상
뜰안에 수국이 있다. 세 그루다. 그루마다 세력이 대단하다. 그런 수국을 볼 때마다 올해는 꽃을 보겠거니 기대한다. 하지만 이미 꽃 피는 시기를 놓치고 있다.
수국을 꽃 피우는 데는 필시 비법이 있을 듯하다.
소담스럽게 꽃 피운 꽃가게 수국을 보면 부럽다. 주인에게 수국 꽃 피우는 비법을 한 수 배우고 싶지만 그 또한 영업비밀일 것 같아 아쉽게 물러선다.
수국 꽃은 여느 꽃과 달리 크고, 둥그렇고 탐스럽다. 게다가 푸른 색 꽃빛이 신비감을 뿜어낸다. 우리가 잠든 밤, 우주에 기거하시는 어떤 분이 이 땅으로 내려와 달을 보고 웃으시다가 두고 간 얼굴답다고 나는 어느 글에 쓴 적이 있다.
손수 수국을 키워 꽃을 보고 싶었다.
유실수들은 여럿 쉬운 대로 나무시장에서 구입해다 심었다. 그러나 수국만은 아니다. 아내가 탐스럽게 핀 걸 보았다는 강릉 언니네에서 묘목을 얻어왔다. 언니가 손수 삽목하여 키운 1년생 묘목이라 했다. 그걸 붓꽃과 함께 뜰에다 심었다. 심어만 놓으면 잘 크고, 또 때 되면 꽃도 피고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다년생이지만 생육이 달랐다.
붓꽃은 심어놓은 이듬해부터 꽃대가 올라와 그 멋진 황금색 무늬의 보라꽃을 피웠다. 부채붓꽃이었다. 뿌리는 칸나를 닮았지만 칸나가 추위에 약하다면 붓꽃 뿌리는 흙 위에 맨 살을 드러내고도 얼지 않는다. 수선화처럼 추위에 강한 꽃이다.
붓꽃이 해마다 멋진 꽃을 피우며 조금씩 영토를 넓히는 데 비해 수국은 4, 5년이 지나도 꽃은커녕 잎만 무성하다. 인터넷에서 수국을 검색했다. 꽃 피지 않고 잎만 무성한 수국을 ‘깻잎수국’이라고 낮추어 불렀다.
깻잎수국은 퇴비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란다.
가급적 퇴비는 꽃 피는 시기가 끝난 가을이나 겨울에 주어야 한단다. 이른 봄에 주면 줄기만 비대해져 꽃 피우지 않는단다. 가만히 생각해 보려니 봄날 붓꽃에 퇴비를 줄 때 수국도 함께 준 것 같았다.
그해부터 퇴비 주는 걸 삼갔다. 그렇게 두 해를 넘겼는데도 여전히 꽃은 피지 않았다. 안성의 겨울이 유별나게 추워 그런가 하고 인터넷 검색을 또 했다. 집안에서 키우는 수국도 겨울엔 추운 바깥에 내놓아야 이듬해 꽃이 핀다고 했다. 작약이나 야생초 씨앗도 그렇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말에 쉽게 수긍했다.
그와 함께 또 얻은 것이 있다.
수국의 꽃눈이 지난해에 자란 가지의 3번 4번 잎눈에 맺힌다는 것도 알았다. 이제야 어렴풋이 수국이 꽃 피우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겨울을 지나면서 그해에 자란 줄기가 모두 죽어 있었고, 새 줄기가 올라왔다. 당연히 수국이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동사였다. 그러니 꽃 필 눈이 있을 리 없었다. 안성이 수국이 월동하기에 너무 추운 곳이란 걸 알았다.
“겨울에 보온막이를 해주면 안 될까.”
결국 아내가 내 고민의 해결책을 열어주었다.
아무래도 올해는 깻잎수국인 채로 두고, 겨울에 튼튼한 보온막이를 해 주어 수국의 꽃눈을 살려야할 것 같다. 꽃을 보기 위해 이 정도로 오래 기다렸으니 내년엔 탐스런 꽃을 마음껏 가까이할 수 있겠다.
안성은 확실히 춥다. 위도가 서울보다 낮은데도 더 춥다.
감나무나 대나무가 월동을 힘들어 하고, 포도나무가 종종 동해를 입는다. 그러고 보면 수국이 살기에도 그리 적당한 환경이 아니다.
식물의 생장은 기온이나 사람의 인위적 작용에 의해 생육이 크게 달라진다. 사람의 인생도 그렇지만 식물 역시 꽃 한 송이 피우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여름에 백석의 시를 읽다 (3) | 2025.06.23 |
---|---|
여자가 혼자 사는 일 (3) | 2025.06.03 |
나는 얼마짜리 인생인가 (1) | 2025.04.20 |
민낯을 사랑하는 일 (0) | 2025.03.27 |
신라의 독특한 스토리 텔링 (1) | 2025.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