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장예모의 긴 여운 ‘5일의 마중’

권영상 2016. 8. 27. 19:27

장예모의 긴 여운 ‘5일의 마중’

권영상




새벽부터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오랜만의 비다. 25일간의 폭염 뒤에 만나는 비. 막혔던 지상의 숨소리를 듣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아, 살았다!’ 그런 말이 튀어나온다. 35,6도의 길고 오랜 폭염은 공포에 가까웠다. 절대 권력이나 압제의 통치가 이렇겠다. 폭염도 종언을 고하려는지 창밖에 비가 내린다.



그 비 내리는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고 싶다. 그런데 나는 영화 ‘5일의 마중’을 막 켜놓았다. 한쪽 정신을 창밖에 두고, 또 한쪽 정신을 영화에 두며 내가 혼란스러워할 때 검정 비옷으로 자신을 가린 한 사내가 여인의 집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린다. 그가 누군지 알고 있는 여인은 눈물 가득한 눈으로 꼼짝없이 문을 바라본다.

문화대혁명의 와중 속에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숨어 지내던 루옌스(진도명 역)가 비 내리는 밤, 은밀히 자신의 옛집을 찾아온 것이다. 그의 아내 펑완위(공리 역)은 두려움에 문을 열지 못한다. 루옌스는 ‘내일 8시 기차역에서 만나자’는 쪽지를 문 밑으로 밀어넣고 계단을 내려선다. 학교 발레단에서 주인공역을 맡고 싶었던, 모택동 사상에 심취한 딸 단단(장혜문 역)은 이 정보를 혁명대에 신고한다.



그 일로 감옥에 잡혀간 루옌스는 무려 20년만에 길고긴 문화혁명의 종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5일에 도착할 거라고. 어쩐지 딸 단단의 마중을 받으며 집에 돌아온 루옌스는 아내 펑완위를 보고 당황한다. 아내가 자신이 누군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남편인 자신을 눈앞에 두고도 자신이 그동안 자신을 감시하고 폭행해온 펑 아저씨로 알고 있다.

출옥하여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편지를 받고 남편을 기다리는 그 사이, 아내는 심인성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말았다. 길고 지루한 파괴적 혁명이 아내 펑완위의 정신까지 파괴한 것이다. 이미 발레를 그만 두고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 딸의 현실도 펑완위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건 발레 하는 딸을 원했던 남편 때문이다.




한 집에 살지 못하는 루옌스는 날마다 아내를 찾아가 자신이 당신의 남편이라고 말해보지만 아내는 한사코 자신을 모른다. 아내의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감옥에서 보낸 그 많은 편지를 매일 매일 읽어주지만 그 일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자신을 점점 남편이 아닌 ‘편지 읽어주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매월 5일이 되면 거울 앞에 앉는다. 기차를 타고 돌아올 ‘남편’을 마중가기 위해 곱게 머리를 빗는다. 그리고 남편의 이름을 적은 피켓을 들고 기차역으로 나가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출구의 문이 닫히면 무겁게 돌아선다.



아내는 루옌스가 돌아올 때를 위하여 루옌스가 즐겨 치던 피아노를 조율하려 조율사를 구한다. 이 사실을 안 루옌스는 조율사를 자처하며 아내를 찾아와 조율을 마치고 그 옛날의 피아노를 친다. 그때다. 아내는 그 추억의 소리에 가까이 다가와 루옌스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루옌스는 그런 아내를 껴안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지만 아내의 비명에 다시 놀란다.

“나가! 나가! 이 나쁜 펑 아저씨! 여기가 어디라고!”

아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루옌스는 펑 아저씨를 찾아가지만 오히려 펑의 아내에게 비정한 혁명분자로 오인 받고 심한 욕설을 듣는다. 타인을 감시하고 폭력을 행사하던 사람들조차 문화혁명에 희생되기는 마찬가지. 그녀도 남편을 잃었다.



중국을 휘몰아친 문화대혁명의 비극이 한 개인을, 또는 한 가정을, 한 사회를 어떻게 파탄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장예모 감독의 영화다. 장예모와 함께 영화를 본 스필버그가 ‘매우 깊고 훌륭한 영화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고 말했을 만큼 아픈 영화다. 길고 긴 비극적 역사를 한 가정 속으로 이끌고 들어와 단순하게. 동화처럼 간결하게 만들어낸, 거장의 작품다운 여운을 사랑하고 싶다. 무엇보다 배우 공리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깊이있는 연기를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



새벽 3시부터 내려 6시에 그친다던 비는 약속대로 그쳤다.

일어나 창가에 가 선다. 지난 25일 동안 우리를 제압하던 폭염의 흔적이 잔혹하다. 한창 피고 있을 백일홍은 꽃째 말라 보기에도 흉하다. 울타리 삼아 심었던 철쭉은 반이 말라죽었다. 폭염이 횡행하는 동안 일명 국민의 5%라는 이들의 비리와 축재와 무능력과 사드와 북한의 핵으로 우리는 폭염보다 더한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영화 ‘5일의 마중’이 지금 끝난 것처럼, 아니 25일만의 폭염이 그친 것처럼 우리 사는 인생도 조금은 나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