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마음을 움직이는 시의 힘

권영상 2016. 5. 6. 11:22


마음을 움직이는 시의 힘

권영상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어한다. 그가 나와 친밀한 관계에 놓여 있다면 더욱 그렇다. 가급적이면 그의 마음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를 원한다. 그러려면 그의 기호에 맞는 좋거나 적절한 정보를 그럴 듯한 언어적 수사로 감동시켜야 한다.



상대를 언어로 감동시키는 부류 중에 시인이 있다. 자기만족을 위해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면 시인 역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어한다. 독자를 움직이는 데는 감동이 필수적이며 감동의 동력은 흔히 소통과 구현에서 찾을 수 있다. 소통의 핵심은 공감이다. 다른 말로 의미의 공유다. 독자와 의미를 공유하려면 우선 독자에 대한 관심사와 독자가 안고 있는 아픔과 고난과 그들이 놓인 현실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독자를 훤히 꿰뚫고 있다 해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구현의 테크닉이 결여되면 불가능하다. 소통과 구현이 원만하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전달이 힘을 받고, 정서적인 공유 또한 가능해진다.

이번호는 대체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소통과 소통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 소박하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1. 반복 운율의 힘



키가 작을 때도/ 강아지풀/ 강아지풀// 키가 클 때도/ 강아지풀/ 강아지풀// 다 자랐을 때도/ 강아지풀/ 강아지풀// 늘 그렇게 불러도/ 꼬리를 살랑살랑// 강아지풀 귀는/ 꼬리에 들어있어서

                              


                                                                             -박두순의 ‘강아지풀’ 전문 <아동문학세상> 2016년 봄호



봄이라는 벌레가/ 꾸물꾸물/ 기어온다/ 꼬물꼬물/ 기어온다/ 투명 벌레다// 아무도 잡을 수 없다/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김철순의 ‘아지랑이’ 전문 <어린이와 문학> 2016년 3월호




두 시 모두 반복 운율의 힘에 기대고 있다.

박두순의 시, ‘강아지풀’의 소통의 소재는 강아지풀이다. 키가 작을 때도 강아지풀 이름은 강아지풀이고, 키가 다 자라도 역시 강아지풀 이름이 강아지풀이라는 아이러니한 의문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이 시에 있어서의 공유의 모티프다. 그러나 소통이 잘 되는 소재를 다루어내는 일만큼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자칫하면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이야기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표현이 진부하면 마음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는 ‘강아지풀’이라는 친밀한 시어의 반복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면서 새로운 시적 상상의 옷을 입힌다. 강아지풀의 귀가 꼬리에 들어있다는. 귀가 꼬리에 들어있다는 건 보편적 진실과 분명히 다르다. 그러기에 다 큰 풀을 보고 강아지풀이라 부른대도 강아지풀은 여전히 좋아한다. 그것이 이 시를 읽는 재미다.



김철순의 ‘아지랑이’도 아지랑이가 꾸물꾸물 올라오는 봄의 현상을 소통의 소재로 삼고 있다. 봄날 들판에 나서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 아롱아롱 대지를 흔드는 아지랑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멀리 달아나는 것이, 아무도 잡을 수 없고, 가로막을 수 없는 것이 그의 속성이다. 시가 단순하다. 몇 안 되는 시어로 지어낸 짧은 시다. 그런데도 시가 우리 의식 속에서 자꾸 꼬물거리는 건 아지랑이와 봄을 동시에 벌레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봄이며 또한 아지랑이로 ‘꼬물꼬물 기어온다’ 라는 활유와 반복의 방식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작지만 여운이 긴 시다.



2. 가족애의 힘



아기가 눈 똥은 꽃입니다.// 내 동생이 눈 똥을 두고// 할아버지는/ ‘고놈 참 냄새도 좋고.’// 애기똥풀 줄기가/ 밀어올린 똥이/ 예쁜 꽃이듯// 아기가 눈 똥은 꽃입니다.

                          


                                                                            -김종훈의 ‘아기 똥은 꽃’ 전문 <시와동화> 2016년 봄호



두더지처럼/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온/ 아빠가 나를 덮쳤어// 온몸에 힘을 주느라/ 숨을 쉴 수가 없어// 치타에게 붙잡힌/ 스프링복처럼/ 팔다리를 휘저어 보지만/ 소용이 없어// 이건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너무 즐거운 고문이야

                               


                                                                                   -이사람의 ‘간지럼’ 전문 <시와동화> 2016년 봄호




두 시 모두 2016년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신작 동시다. 가족 간의 긴밀한 사랑을 중심축으로 하고 있다. 가족만큼 의미나 정서의 공유 폭이 넓은 소재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시는 벌써 일정 이상의 공감도를 확보해 놓고 있는 셈이다.



김종훈의 시, 도입부는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다.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느끼는 첫인상이다. 첫인상이 좋으면 내용의 소홀함이 있다 해도 호감의 견인력을 유지해 갈 수 있다. 수미상관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시도 시의 중반부에 단지 ‘고놈 참 냄새도 좋고’라는 할아버지의 말 하나가 소박한 기둥 역할을 한다. 그런데도 그런대로 시로서의 든든함을 유지하는건 첫인상에 대한 호의 때문이다.



이사람의 시 ‘간지럼’ 은 아빠가 시속 화자에게 몰래 덤벼들어 간지럼 주는 사건이 중심 내용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 간지럼주기이다. 간지럼주기는 신체 접촉 중에서도 웃음의 정서를 가장 극적으로 주고받는 긴장감 넘치는 행위다. ‘온몸에 힘을 주느라/ 숨을 쉴 수 없’는 위기감을 치타에게 잡힌 스프링복의 죽음 직전의 상태에 비유함으로써 나름대로 공감도를 높이고 있다.



3. 서사의 힘



자, 오늘은 감자를 심을 거예요./ -선생님, 생쥐가 씨감자를 다 갉아먹어 버렸는데요.// 자, 그럼. 호미로 풀이라도 뽑기로 해요./ -선생님, 생쥐가 호밋자루를 다 갉아먹어 버렸는데요.// 자, 그럼. 손 씻고 학교로 갈 준비하세요./ -선생님, 생쥐가 비누를 다 갉아먹어 버렸는데요.// 자, 버스에 다 탔죠? 자기 자리에 얌전히 앉으세요. /-선생님, 생쥐가 의자를 다 갉아먹어 버렸는데요.

               


                                                            -박성우의 ‘동물학교, 현장체험’ 전문 <어린이와 문학> 2016년 4월호



뿌- 뿌- 뿌우-/ 신호를 보내고 있다.// 부서진 원자력 발전소, 바닷가에 서 있던 기와집, 자동차, 바다에 쳐놓은 그물, 고기 잡던 배, 아직도 찾지 못한 사람들...// 쓰나미가 훑고 간 후쿠시마//곰 인형, 공책, 모자, 의자, 냉장고, 전기밥솥, TV, 장롱, 옷, 신발, 플라스틱 장남감, 타이어, 비닐 봉투, 음식물, 그리고 페트병... //우리들이 버린 쓰레기들이//지도에도 없는 섬이 되어 태평양을 흐르고 있대. 물고기와 물새들이 쓰레기를 먹으면서 언젠가 우리 식탁으로 돌아올 거래.//동백섬 입구// 바다를 뛰쳐나온 인어공주가 비늘옷 대신 페트병 옷을 걸치고 오늘도 나팔을 풀며 신호를 보내고 있다./ 뿌- 뿌- 뿌- 뿌우-

                      


                                                                      -박일의 ‘페트병 인어공주’ 전문 <열린아동문학> 2016년 봄호



위의 두 시는 서사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앞의 시는 공부도 싫어하고, 체험학습도 싫어하는 우리의 교육현장에 대한 일종의 경고요, 뒤의 시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재해에 대한 경고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박성우의 ‘동물학교, 현장체험’에 선생님과 화자인 나가 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뜻과 달리 지시 일변도이며, 학생은 이를 거부하는,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 데서 오는 갈등이 중심 내용이다. 이런 갈등은 학교만이 아닌 가정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얼핏 보아 이 시가 말을 듣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핑계대는 학생을 그린 것 같지만 아니다.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교육 현장을 은근히 고발하는 힘이 이 시에 숨어 있다. 고발성을 드러내는 시일수록 동시대인들의 공감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다.



박일의 ‘페트병 인어공주’ 속에는 두 개의 객관적인 사실이 차용되고 있다. 하나는 쓰나미가 일어난 일본의 후쿠시마 사태이며, 다른 하나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떠다닌다는 쓰레기섬이다. 이 두 개의 팩트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공유의 진실이다. 이 두 사실을 통해, 동백섬에서 인어공주가 페트병 옷을 걸치고 나팔을 불며 경고를 보낸다는 메시지다. 처음과 마지막 연만 시인의 상상과 감정이 개입되었다.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두 개의 진실을 들이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4. 농담과 상상의 힘



귀가 아파 병원에 갔습니다./의사 선생님이 내 귀 안을 보시더니/급한 목소리로 간호사를 불렀습니다.//간호사님, 큰일 났어요./얼른 119 전화를 걸어서/포클레인 한 대만 보내달라고 하세요.”//“예?”// “이 환자 귓구멍에 때가 하도 많아서 포클레인으로 긁어내야겠어요.”//“예!”// 조용하던 병원이 갑자기 떠들썩합니다.

                                


                                                                                 -서정홍의 ‘농담’ 전문 <열린아동문학> 2016년 봄호



한여름, 어떤 밤은 하얀 종이 위에서 글자들이 뛴다 오리처럼 꽥꽥거리는 선생님에게서 도망가고 싶은 아이들처럼 뛴다 (중략) 개구리처럼 뛴다 (중략) 개구리와 함께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다 밤새 뛰다 보면 하얀 종이가 파랗게 풀밭으로 변한다 엄동수는 개구리와 함께 여름을 보낸다 둥둥 하늘과 가까워진다 개굴개굴 개구리가 종이 위에서 울음을 낳는다 개구리 알처럼 꿈을 낳는다 반짝반짝 별을 낳는다 배 볼록한 올챙이들이 와글와글 태어난다 (중략) 야훗! 서진아 손잡고 가자 진우랑 다빈이랑 어둔 담장 위 고양이도 데리고 가자 엄동수, 달나라로 달려다.

               


                                                      -김륭의 ‘열대야와 개구리 마법사’ 전문 <어린이와 문학> 2016년 3월호




아무리 공유의 폭이 큰 메시지를 담아내고 싶다 해도 구현해내는 기술이 낮으면 전달력이 떨어진다. 그러고 보면 전달력은 메시지에 걸맞은 적절한 표현 기교에서 비롯된다.



서정홍의 ‘농담’을 이끌어 가는 힘은 과장이다. 귀가 아파 병원에 갔는데 귀지가 많다고 한마디 하는 의사의 말을 과장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끔 치과에 갈 때면 의사에게 입안을 보여주는 일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양치 상태를 보고 속으로 웃을까봐 그런다. 귀지 많은 내 귀를 보고 포클레인이라도 한 대 불러야할 것 같네요, 할까봐 망설여진다. 서정홍은 그런 공감의 소재를 과장의 방식으로 메시지를 잘 전하고 있다.



김륭의 시 ‘열대야와 개구리 마법사’는 열대야의 밤에 개구리 마법사가 되어 시골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일종의 농담 같은 상상이다. 개구리처럼 뛰고, 개구리와 뜨거운 밤을 보내고, 개구리 알처럼 꿈을 낳는 상상과 밤새도록 우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별을 헤아린다는 그런 상상을 이야기한다. 열대야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상상이다. 그게 가능한 것은 누구나 그런 시골 정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은 의미와 정서를 공유하는데 있지만 무엇보다 구현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시의 두 축이 메시지와 적절한 표현 기술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동문학평론 2016년 여름호 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