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우리에겐 멍석문화가 있다

권영상 2015. 11. 2. 11:24

우리에겐 멍석문화가 있다

권영상

 

 

 

출판사 편집자들과는 주로 홍대입구역 근방에서 만난다. 파주 출판단지에서 나오기 쉽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에 넉넉히 대어갈 때면 길거리를 돌며 무명가수들의 노래를 듣는다. 내가 알아들을 노래가 아니어도 빙 둘러선 사람들 틈에 끼어선다. 노래만은 흥겹다. 나도 모르게 박자에 맞추어 까닥대는 내 발을 본다.

 

 

나만 흥겨운가. 모르기는 해도 여기 둘러선 사람들 모두 흥을 안다. 판이 없어 그렇지 판만 깔아놓으면 다들 한 가락씩 하는 게 우리들이다.

 

 

 

 

나 어렸을 적만 해도 집안의 큰일은 주로 마당에서 치루었다. 큼직한 천막을 치고, 휘장을 두르고, 바닥에 멍석을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서 회갑연이든, 초례든, 계모임을 했다. 살림이 넉넉한 집이라면 심부름하는 이가 드나들 자리만 두고 마당 가득 멍석을 깔았다.

얼큰히 술에 취해 잔치가 무르익으면 멍석 깔아놓은 값을 한다. 누군가 판을 일으켜 세운다. 예전엔 마을마다 근방에 이름깨나 날리는 분이 있었다. 

 

 

 

그가 먼저 일어나 바지 저고리 바람으로 자분자분 멍석을 밟으며 춤을 춘다. 그러면 둘러앉은 이들도 가만 못 있는다. 엉덩이가 달싹달싹 안달이다. 언제나 젊은 분들 몸이 먼저 뜨겁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이 일어서지만 나중엔 서너 사람이 일어서고, 대여섯 사람이 일어나 허리를 잘숙대며, 방뎅이를 휘돌리며 겅실겅실 춤을 추는데는 윗뜸 아랫뜸 사람 구분이 없다. 그러다가 맨 나중에 마지못한 척 나이 지긋한 어른이 일어나 춤을 출 때면 판은 절정이다. 우리나라 춤은 정신으로 추는 춤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춤이다. 연륜이, 인생이, 고락이, 눈물이 춤 아닌 것이 없다. 그렇기에 적게 몸을 놀리는 나 많은 이의 춤일수록 그윽하다.

 

 

 

멍석은 회갑연이나 혼사 때만 까는 게 아니다.

상이 났을 때도 대사를 마치면 마당에서 즐거이 한판을 노는 때가 있다. 호상이다. 자식 많이 낳고, 수를 다 하고 가는 상례에는 반드시 술과 춤이 있다. 오래도록 망자를 모신 상주의 노고를 덜어주고, 그 슬픔을 위로해주기 위해서다.

날 궂은 날이면 마당에 볏짚을 넉넉하게 펴고 그 위에 멍석을 깐다. 멍석을 깐다는 것은 판을 깐다는 말이다. 이를 잘 맞추어 깔고 앉아 한 고패씩 술이 돌면 어디서 났을까. 장구와 징과 꽹가리가 저녁 마당을 달군다. 징소리에 맞추어 고된 몸을 들썩이며 어깨춤을 춘다. 우스갯소리를 한다. 박장대소를 한다. 그래도 흉이 되지 않는게 호상이다.

 

 

 

우리 조상들은 눈물과 웃음의 경계를 갖지 않는다. 눈물이 나도 웃을 줄 알고, 웃다가도 지나치면 운다. 눈물 따로 웃음 따로가 없다. 눈물만한 기쁨이 어디 있고, 춤만한 눈물이 어디 있을까.

그걸 풀어줄 때 멍석이 필요하다. 넉넉한 이들이라면 가정의 큰일을 핑계로 멍석을 깐다. 살면서 마음에 맺히는 회한과 근심과 상처가 있대도 어디 풀 데가 없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함이다. 처음에야 멍석을 깔아놓으면 멋쩍어 하고, 데면데면 하지만 아픈 속을 술이 적시면 너남없이 일어나 마음의 한을 춤으로 푼다. 눈물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멍석이 그립다. 

 

 

 

그러고 보면 멍석은 기죽은 이를 살려내는 살 판이다. 별 재미없는 인생을 살려내는 놀 판이다. 우리네 삶에서 무대란 곧 멍석이다. 한 걸음 내디디면 거기가 멍석이다. 춤꾼이 따로 없다. 어깨를 들썩인다면 그게 곧 춤이요, 그가 곧 춤꾼이다.

그런 때문인가. 길거리 공연장에 빙 둘러서 있는 이들 모두 흥겹다. 불러내면 한 곡조씩 노래를 뽑고, 춤 한번 출 것처럼 몸이 뜨거워 보인다. 아무리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해도 우리들 핏속엔 이 멍석문화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