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흔들리는 나무가 아름답다

권영상 2015. 10. 14. 17:43

흔들리는 나무가 아름답다

권영상

 

 

 

 

어린 산딸나무 한 그루를 창가에 심었다. 그때가 3년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안성에 내려가 살 형편이 못 되어 젊은 부부에게 잠시 집을 빌려주고 있었다. 그렇기는 해도 나무라도 몇 그루 심어두자는 마음으로 그해 봄, 젊은 부부의 양해를 구하고 심은 나무 중의 하나가 창가의 산딸나무다. 3년생쯤 되는 어린 묘목이었다. 나무 심는 모습이 그들 보기에 성가실까봐 얼른 심는다고한 게 하필이면 집 모서리 그 창가였다.

 

 

 

나중에 혼자 내려와 살아보니 그 곳이라는 게 바람을 가장 많이 타는 곳이었다. 북쪽에서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이 바람벽을 타고 몰려와 덮치고, 동쪽에서 바람이 불면 온통 집이 정면으로 받아들인 바람을 산딸나무에게 몰아주었다.

그러니 한시도 편할 날 없는 게 산딸나무였다. 가끔 온몸으로 바람을 받는 산딸나무를 볼 때면 안쓰러웠다. 처음부터 실한 놈을 심었으면 또 모를 텐데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는, 바람에 시달려 본 적이 전혀 없는 어린 나무여서 가여웠다. 더구나 주인 없는 집에서 일 년을 났으니 나무의 고충이 깊었을 테다.

 

 

 

그 때문이었을까. 산딸나무는 이태가 다 가도록 자라지 않았다. 조금만 자랐다는 뜻이 아니라 아예, 죽은 듯 침묵하고 있었다. 수종 선택을 잘 못 했는지, 식목을 잘못했는지, 혹 나무가 병들었는지……. 생각 끝에 산딸나무를 파내고 목련이나 꽃사과나무를 심을까 몇 번이나 망설였다.

그러던 산딸나무가 3년 째 올봄부터 커 오르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뼘씩 클 만큼 나무는 부쩍부쩍 자랐다. 여름이 지날 때엔 지붕을 넘볼 만큼 키가 컸다. 키만이 아니고 가지도 무성했다. 그렇다고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커 오를수록 나무는 더욱 심하게 바람을 탔다. 바람 부는 날, 방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나무는 금방 부러질 듯 몸부림을 쳤다.

 

 

 

좀은 늦었지만 지주대를 산딸나무 곁에 세웠다. 그리고 단단히 윗쪽과 중간쯤 두 곳을 묶어주었다. 나무는 덜 흔들렸지만 위쪽 무성한 가지들은 여전했다. 그렇다고 그늘이 좋은 나뭇가지들을 잘라내기도 뭣했다. 아픈 이를 안고 살듯 편치 않지만 바람에 휘둘리는 나무를 껴안고 살았다. 올해는 돌연히 부는 강풍도 잦았다. 그런 밤엔 나무둥치가 꺾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여러 날 했다.

 

 

 

거친 바람이 지나간 요 며칠 전이다.

바람에 헐렁해진 지주대를 다시 묶어주려 끈을 풀고 나무를 흔들어봤다. 뜻밖에도 내 손에 잡힌 나무는 내가 우려하던 만큼 마구 흔들리는 그런 만만한 나무가 아니었다. 오히려 강고했다. 딱 버티는 힘이 내 손에 느껴졌다. 가만히 나무를 살펴보다가 나는 놀랐다. 뿌리에 맞닿은 밑둥이가 젊은 청년의 어깨처럼 사방으로 떡 벌어져 있었다. 바람과 싸우느라 넓게 뿌리를 벋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나무를 걱정하는 동안 나무는 제 근본을 다져놓았던 거다.

 

 

 

 

세상에는 자식 걱정이 지나쳐 나이 먹도록 품에 끼고 살거나, 분가를 시키고도 용돈을 보내는 부모들이 있다고 한다. 그게 부모 마음일 테지만 그럴수록 자식은 홀로 서는 힘을 잃는다. 어느 누구든 바람을 피하며 살 수는 없다. 바람에 상처 입지 않고 살 수도 없다. 나무가 그렇듯 자식도 바람 많은 들판을 살다보면 저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는 힘을 키우게 된다. 나무가 아름다운 건 바람에 흔들릴 줄 알기 때문이다.

편할 날 없는 내 창가의 산딸나무에게도 가을이 찾아왔다. 잎이 별처럼 빨갛게 물들고 있다. 바람 많은 나무가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는 말을 산딸나무가 내게 보여주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