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나무의 숨고르기
산딸나무의 숨고르기
권영상
3년 전 봄이다. 뜰마당에 나이 먹은 매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걸 심으면서 산딸나무도 하나 구해 창문 밖에 심었다. 창문에 어리는 초록 그림자도 보고 꽃도 볼 겸 창문에서 약간 비켜난 곳에 구덩이를 파고, 여기저기서 모은 표토를 넣어 정성들여 심었다. 나무를 심어놓고 나는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나 산딸나무가 커 갈 하늘을 그려보았다. 비 오면 빗소리를, 바람 불면 바람 소리를, 새벽이면 동네 새들이 날아와 알람시계 대신 나를 깨워줄 그때를 꿈꾸었다. 그 꿈에 부풀어 물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이든 매화나무보다 내 마음이 온통 산딸나무에 가 있었다.
그런 내 마음과 달리 그해가 다 가고 이듬해 봄이 오고 여름이 와도 산딸나무는 커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만한 새순에 간신히 붙은 서너 장 잎이 고작이었다. 그 잎도 여름 장마가 끝나면 누렇게 변하다가 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내가 식목을 잘못하지 않았을까 하고 나를 자책했다. 그러다가 혹시 묘목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나무를 탓했다. 내 손으로 심은 매화나무는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고 있었으니 나무를 탓할 수밖에.
그도 아니라면 기온 탓일지도 몰랐다. 옮겨 심은 이웃집 감나무가 동사했다. 분명 서울보다 여기 안성의 기온이 낮다. 아직 삼동 중인데도 서울에 올라가며 보면 양재시민의 숲에서부터 벚꽃이 화사하게 피고 있었다. 나는 다시 내려가는 길에 꽃시장에서 메이플 한 그루를 샀다. 산딸나무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메이플을 심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삽을 들고 뽑아내려하니 안쓰러웠다. 내 급한 성미에 나무가 희생되는 것 같아 마음을 꾹꾹 누르며 그 해를 또 견뎠다. 그러길 정말 잘 했다. 그 다음 해 봄부터 산딸나무는 자라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쑥쑥 커 올라 올해는 꽃도 피웠다. 더울 때는 지붕보다 높이 자란, 짙은 나무 그림자 밑에 의자를 놓고 앉아 책을 읽는다. 바람에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며, 장맛비 소리를 듣는다. 산딸나무는 그동안 성장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늘이 넓고 늠름한 나무로 자라 오르기 위해 숨고르기를 한 셈이었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를 마쳐갈 무렵, 어머니는 돌연 장기입원을 하셨고, 나는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학을 하지 못했다. 그때는 정말 되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친구들은 쑥쑥 제 앞길을 향해 걸어 나가는데, 나는 친구를 사귀면 친구가 병들고, 포도나무를 심으면 포도나무가 죽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군에 입대 하려했지만 그 마저도 내게는 기회가 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깜깜한 절벽 앞에 외로이 서 있는 기분이었다. 지금 내 창문가에 서 있는 산딸나무 심정이 그때 나와 같지는 않았을까. 아무리 꿈을 가지고 남들처럼 커 오르려 해도 도무지 되는 게 없어 나처럼 괴로워한 건 아닐까.
어쨌건 지금 생각해도 그때, 산딸나무를 뽑아버리지 않은 게 참 다행이다. 어떤 나무에겐 쉬운 일도 어떤 나무에겐 그들과 달리 성장을 위한 몸살을 유난히 떠는 경우가 있다. 몸살이란 포기의 전조가 아니라 내면의 힘을 비축하기 위한 숨고르기다. 사람이나 나무나 되는 게 없다고 불평할 때가 있다.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한탄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일이란 다 때가 있다. 절망하지 않는 한 ‘하기만 하면 척척 잘 되는’ 그런 때가 오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