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힘든 것도 다 한 때여

권영상 2012. 6. 21. 10:59

힘든 것도 다 한 때여

                              권 영 상

 

 

 

 

토요일 오후엔 김장밭에 가야한다.

배추를 묶어줄 때다. 비록 풀씨 한 톨만한 밭이지만 거기에 배추 서른한 포기와 무 마흔 여섯 개가 건장하게 자라고 있다. 올핸 뭐든지 풍년이란다. 풍년인 탓에 우리 밭의 무 배추도 튼실하다.

“오늘 배추 묶어주는 거 잊지 말아요.”

 

농사일에 문외한인 아내가 아침부터 재촉이었다. 좁은 밭에 뵈게 심어놓았으니 배추포기가 벌어질 리 없다. 그냥 놓아두어도 스스로 알이 차고도 남을 배추들이다. 그렇기는 해도 퇴근을 하자마자 아내와 밭으로 갔다.

 

밭에 도착한 대로 준비해간 끈으로 배추를 묶었다. 그 동안 아내는 무 이랑에 들어서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무청을 떼었다. 무청도 무청이려나와 무 크기가 사발통만 하다. 어찌나 잘 자랐는지 무가 선 두둑의 흙이 터져나갈 정도다. 배추를 묶다 허리를 펼 겸 일어섰다. 생각할수록 무 배추가 이토록 실하게 커준 일이 기특했다.

 

지난 8월 중순이었다.

때 맞추어 무씨를 넣고, 그 한 주 뒤에 배추모종을 했다. 그 다음 주에 간신히 틈을 내어 한번 들르고는 다음 한 주는 사정이 있어 밭을 찾지 못했다. 빠뜨리지 않고 밭을 찾았는데 그 주는 너무 바빴다. 한 주일내내 밭에 못 간 것이 마음에 걸렸다. 웃자는 말이지만 비록 4평지기 ‘농군’이어도 만석지기 농사꾼의 애닯은 마음과 다를 바 없다.

 

그 주를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웬걸, 밭에서 전화가 왔다.

벌레가 무 배추를 다 먹어치운다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자, 가슴이 쿵,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무 한 포기 배추 한포기 제 손으로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마음을 모른다. 마치 공들여 키운 자식이 삐끗 잘못 됐을 때의 아비 심정과 같다. 나는 토요일 퇴근을 하자마자 밭으로 달려갔다.

 

김장밭은 너무나 참혹했다.

어린 무와 배춧모에 푸른 빛이 한 점도 없었다. 모두 벌레들이 갉아먹어 온통 흰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생각 같으면 농약을 훅, 치고 싶었다. 그러나 벌레들을 그렇게 무참히 박멸하는 것도 안 될 일이지만 무엇보다 무농약 재배라는 내 원칙을 깨뜨릴 수가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벌레를 잡을 양으로 김장밭에 쪼그려 앉았다. 암만 봐도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잎을 다 떨구어낸 겨울철 앙상한 나뭇가지 같았다. 나는 들고간 돋보기로 무며 배춧잎을 뒤적여 봤다. 간신히 남아있는 마른 잎줄기마저 벌레들은 뭐가 부족한지 아직도 갉고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아마 앞서 갉아먹은 벌레가 낳아놓은 새끼 애벌레들 같았다. 나는 손으로 그들을 떼어내거나 잡아나갔다. 저녁해가 다 가도록 벌레를 잡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내 잘못을 속죄하자는 심정으로 마른 밭에 물을 흠뻑 줬다.

이만하면 됐거니, 하고 밭을 나서다가도 또 물을 길어주고 주고.... 그렇게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는 속으로 올 김장은 글렀구나 했다.

 

근데 그건 나의 속단이었다. 한 주일을 더 벌레몸살을 하고 나더니 무 배추가 눈부시게 자라오르기 시작했다. 생명력이란 놀라운 것이었다. 온 힘을 천둥처럼 밀어올리고 있었다.

“벌레 꾀는 것도 다 한 때여!”

내 밭을 건너다 보던 밭주인 할아버지가 웃었다.

 

사람인들 왜 무 배추에 벌레 꾀듯 고통을 겪을 때가 없겠는가.

그러나 그것도 다 지나놓고 보면 ‘한 때’인 것 같다. 그때를 잘 견디면 그때를 보상받듯 그보다 더 큰 힘을 낼 수가 있다. 정말이지 아무 가망없던 무 배추가 이렇게 장하게 커 줄줄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