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나가 떠났다
난나가 떠났다
권영상
나흘간 머물던 안성에서 올라왔다. 빈 반찬통이며 흙투성이 옷가지가 든 짐이며, 텃밭에서 크는 상추잎 따넣은 가방을 차에서 내려들고 계단을 올랐다. 다들 직장에 가고 없을 오후 4시쯤. 있다면 빈 집을 지키고 있을 난나뿐이다.
“난나, 나 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난나를 불렀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아니, 나 왔다는 데 이 녀석이.”
그러며 거실에 들어서고 보니 난나 있는 자리에 난나가 없다. 난나 자리는 현관문과 마주 보는데서 조금 비켜난 서랍장 앞이다. 안 보이니 집안이 허전했다. 이 시간에 올라오면 늘 나를 맞아주었는데. 있어야할 자리에 놓인 밥그릇도 물그릇도 없다.
“미용이 잘못 됐나?”
나는 들어오는 대로 짐을 풀었다.
미용은 내가 안성에 내려가기 하루 전에 했다. 미용이란 이발과 목욕을 뜻하는 말이다. 이발을 하고 나면 목욕을 시켜준다. 그렇기는 해도 보통 목욕을 시켜 보냈다.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구박을 받을까 싶어서. 보통 미용을 하고 돌아온 걸 보면 등이나 배 부위에 털을 깎느라 생긴 상처 자국이 있었다. 그러면 다시 병원에 가 치료를 받는 수가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병원에 다시 갔을 수도 있겠구나 했다.
소심한 난나에게 있어 병원은 기분좋은 곳이 아니다. 난나는 낯선 강아지들과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 번씩 동물 병원에 가면 기가 꺾여 온다. 난나를 맡겨놓고 찾으러 갈 때에 보면 영악하고, 아무에게나 바락바락 짖으며 대드는 무서운 놈들이 많다. 난나는 활달하지 못해 그들과 대적하거나 맞설 배짱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그럴 때에 우리 식구를 만나면 비로소 ‘아유, 날 좀 살려줘. 혼자 있느라 얼마나 무서웠다고!’ 하는 식으로 그제야 왈왈왈 짖었다.
그렇게 미용을 하고 돌아오면 병원에서 겪은 고충 때문인지 그 여파가 며칠을 갔다. 더구나 제 발가벗긴 몸이 창피해 꼼짝 못 할 만큼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미용을 마치고 온 그날도 집에 와선 온종일 엎드려 있었다. 어디가 아픈지 신음소리까지 내면서. 으레 병원에 갔다오면 끙끙댔으니까 그날도 이발을 하느라 좀 아팠던 모양이구나, 하고 말았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는 안성으로 내려갔었다.
나흘을 머무르느라 아내와 매일 통화했지만 난나 이야기는 없었다.
그 날 저녁 아내가 퇴근해 집에 들어오자, 난나 소식부터 물었다.
“난나 누가 데려갔나?”
솔직히 어디 키운다는 사람 있으면 주어버릴 생각도 여러 차례 했었다. 애완견에 대해 그렇게 말하면 죄받을 일이지만 실제로 키워보니 불편함이 많았다. 처음부터 배설에 대한 규칙을 엄하게 가르쳐주지 못했다. 그냥 신문을 깔아주고 거기다 하게만 했다. 어린 그나 야박하지 못한 우리들이나 그런 일에도 엄격하지 못했다. 다들 직장에 나가고 없는 빈 집에서의 난나의 배변은 제멋대로였다. 침대 밑에 들어가 누기도 하고, 커텐 뒤에다 배변해 놓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서랍장 앞에 줄을 매어놓고 키웠다. 집안에서 애완견을 키운다는 일은 보기와 달리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아내에게 털 알러지가 나타났다. 난나 몸에서 뽑혀 날리는 털 때문에 한여름에도 기침과 콧물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병원을 들락였고, 지금껏 약을 달고 살게 됐다.
난나를 키우고 싶다는 이들이 있으면 솔직히 그 누구에겐가 난나를 맡기고 싶었다. 난나를 돌보거나 함께 놀아줄 여가가 없는 우리의 삶도 문제였다.
어떻든 그렇게 12년을 함께 살았다.
“왜 난나가 그렇게 된 거지?”
나는 난나의 갑작스런 죽음이 궁금했다.
“전화했더니 그 나이에는 심장마비가 오는 수 있다네.”
아내도 마음이 심란해 있었다.
결국 그렇게 해서 난나는 갔다.
그는 처음 우리 집에 와 살면서 자신의 포지션부터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 식구가 세 명이라 생각하는데 난나는 아니었다. 자신까지 네 명으로 생각했다. 포지션도 힘깨나 쓴다고 보는 나 바로 아래에 자신을 놓았다. 그러니 자연히 아내와 가끔 오는 딸아이는 난나 밑이었다. 난나는 아내와 딸아이를 자기 하인처럼 부리고 소리치고 윽박질렀다.
현관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제일 먼저 제가 아는 체를 하고 먼저 짖었다.
그러나 나랑 단둘이 있을 때면 다르다. 초인종 소리에 내가 ‘누구세요!’ 하고 일어서기 전에는 절대 먼저 짖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집안의 조용한 시간을 나의 허락없이 먼저 깨뜨리지 않겠다는 명석함이 그에게 있었다. 난나는 내가 내 방에서 조용히 일하길 좋아한다는 걸 안다.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난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그걸 유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다. 내가 거실에 나와 있을 때에 내 방에서 내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가 나면 ‘전화 왔다’며 나를 바라볼 뿐 그 어떤 소란도 떨지 않는다. 그러나 여럿 모여 있을 때엔 나를 향해 짖으면서 전화 온 걸 알린다.
12년을 살면서 그는 가족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꿰뚫었다. 나와 달리 저보다 포지션이 낮다고 보는 아내는 그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똥과 오줌을 치우라는 난나의 강요에 시달려 왔다. 가족 모두가 그렇듯 그도 먹는 일을 밝히지 않았다. 툭 치면 넘어질, 밥이 담긴 긴 플라스틱 통을 그는 한 번도 쓰러뜨린 적이 없다.
난나가 떠났다고 하니 그를 아껴주지 못한 지난날이 후회스럽다. 있을 때는 솔직히 데리고 사는 일이 불편했는데 없어지고 나니 안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를 빼고 난나를 껴안고 놀아준 적이 없다. 그를 안고 집밖을 나가본 적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모습이 별로 좋은 풍경 같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마당에 개집을 지어놓고 시골사람들이 누렁개 키우듯 나도 그렇게 난나를 대했다.
내가 난나에게 해주는 주된 일은 목욕이다. 그는 내게 제 몸을 맡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에게 목욕을 시켜주는 일은 나의 임무였다. 저보다 포지션이 높다고 여기는 내게 제 몸을 맡기는 게 불편했겠지. 그러나 목욕을 끝내고 드라이어로 몸을 말려주고 나면 잊지 않고 고맙다는 인사만은 꼭 했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그랬으니까.
난나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 ‘난나’라는 이름은 내가 지었다. ‘난 나다’는 이 이름을 난나는 싫어하지 않았다. 불러주는 사람들도 그 이름을 좋아했다.
온갖 떼를 써서 강아지를 산 딸아이가 중 2때부터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난나는 행복했다. 그러나 딸아이가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이후부터 난나는 외로웠다.
난나가 늘 머물던 자리가 자꾸 눈에 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 그리로 눈이 간다. 그와 12년을 살았으니 고운 정도 고운 정이지만 미운 정도 많았다.
다음 세상에 난나가 다시 강아지로 태어난다면 무엇보다 저를 사랑하는 집에서 태어나주길 바란다. 침대 위에서 같이 자고, 한 식구처럼 둘러앉아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먹고 같이 노는, 가급적 정원이 있는 집에서 태어나 강아지다운 삶을 즐기게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집에 와 사느라, 솔직히 내게 구박을 많이 받았다. 생각할수록 그게 미안하다. 더구나 십여 년간 식구들이 퇴근할 때까지 혼자 빈집을 외로이 지켰을 그 많은 시간이 그에겐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게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