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나치며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나치며
권영상
고향에 혼사가 있어 토요일 아침 일찍 내려갔다. 대학 친구가 아들을 장가보내는 날이다. 혼사는 점심시간에 알맞게 오후 1시에 있었다.
“서울엔 일요일인 내일 올라가고 오늘은 우리 집에 가 술 한 잔하자.”
혼사를 마친 친구가 내 손을 잡았다.
“얼른 올라가야지. 지금 가면 고속도로도 안 막힐 때야.”
나는 고속도로 핑계를 대며 손을 뺐다. 고향에 갈 때마다 수없이 이 핑계를 대며 서울로 돌아왔다. 주말이면 고속도로 정체가 심각하긴 하다. 괴롭다못해 짜증난다. 그건 분명하다. 그러나 다음 날이 여유가 있는 일요일인데도 나는 늘 고속도로 타령이다.
점심을 먹고나자, 뜻한 대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들어섰다. 대관령을 넘으며 못이기는 척하고 하루 머물렀다 내일 올 걸 하는 생각을 했다. 내려갈 때마다 혼자 하는 말이 있다.
“강릉 가면 좀 쉬었다 와야지.”
그 말이다. 소나무 숲을 좀 거닐고, 고향 친구들과 사는 이야기도 좀 하고, 술도 편안히 앉아 한잔 하고 올 생각을 한다. 그러고도 내려가면 늘 허겁지겁 되돌아선다. 고향 바다조차 못 들여다 보고 그냥 온다. 청록빛에 가까운 강릉의 봄바다. 지척에 그 바다를 두고 그냥 돌아오는 내가 때론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급기야 횡성휴게소 표지판이 나타났다. 쉬고 싶다. 커피도 한잔 마시고, 또 별 인사도 못 드리고 온 형수님한테 전화도 좀 드려야지 싶었다. 아내한테도 전화를 좀 해봐야겠고. 그런 생각을 하며 가는 내 눈에 횡성휴게소 진입로가 나왔다.
‘잘 달리고 있는데 다음 휴게소까지 가 볼까.’
속도가 한창 붙은 차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질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냥 휴게소를 지나쳤다. 사막을 여행할 때는 오아시스마다 쉬어가는 게 좋다는 말이 있다. 아침에 서울에서 떠나와 예식만 보고 되집어 올라가는 길이니 나의 내면 어느 구석은 지금 피로하다. 그런 의미에서도 마른 몸을 좀 적셔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자동차 정체를 핑계로 지나쳐가는 데는 사실 다른 뜻이 있다. 쉬어서는 안 된다는, 시간낭비라는 나쁜 생각. 내 몸에는 나를 혹사시키는 그 누군가가 있다. 그는 들꽃도 좀 보고, 별도 좀 보고, 논둑길도 좀 걷고 싶어하는 나의 생각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원주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강릉에서 원주까지 한 시간 반. 막힘없이 잘 달려왔다. 원주를 지나면 중앙고속도로와 합류하게 되어 그때부터 막힌다. 그런데 원주를 지나도 막히지 않는다.
액셀레이터를 밟는다. 차가 120킬로로 달린다. 나는 다음 휴게소를 벼르며 달렸다. 좀 일찍 출발해서인지 문막휴게소가 가까워 오는데도 그리 밀리지 않는다. 나처럼 횡성휴게소를 지나쳐온 사람들 때문인지 문막휴게소로 들어가는 입구에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걸 보자 내 생각이 또 바뀌었다.
“쉬려면 덕평휴게소가 좋지.”
나는 그렇게 나를 속이며 문막휴게소를 보기좋게 지나쳤다. 내가 다시 덕평휴게소쯤에 갔을 때다. ‘얼른 집에 가서 편하게 쉬자.’ 그 생각이 또 나를 길 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막았다. 나는 기어이 휴게소 한 번 들르지 않고 주파하여 3시간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내가 하는 일이란 다 이렇다.
달리는 일에만 집착한다. 고속도로를 잠시 비키면 시골길을 산책하거나 하룻밤 쉬고 돌아오는 여유를 부려볼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마다한다. 나는 나의 인생을 질주하듯 아슬아슬 달려왔다. 그래서 삶의 깊은 맛을 아직 잘 모른다.
(교차로신문 2012년 7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