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아직도 행운이 안 오네
어, 아직도 행운이 안 오네
권영상
“서형, 복권 당첨 여태 안 됐어요?”
고향에 내려가 서형을 만나면 농삼아 그런 인사를 한다.
“어, 아직도 행운이 안 오네!”
서형은 어깨를 들썩해 보이며 능청을 떤다. 고향이 시골이다 보니 고향 사람들 모두 농사를 짓는다. 서형도 어렸을 적부터 부모가 해 오시던 농토를 받아 농사를 짓는다. 그런 이가 때를 놓치지 않고 복권을 산단다. 벌써 20년이 됐다고 한다.
“자네도 복권 좀 사게.”
우스갯말로 날 보고 서형이 복권을 사란다.
“참 싱거운 형도. 그 나이까지 복권은 뭔 복권타령이야.”
정색을 하고 말하기 뭣해 나도 농삼아 대거리를 한다. 복권에 대해 나는 아직도 부정적이다. 일확천금이란 게 좀 싫었다. 허황된 것 같고, 왠지 공걸 바라는 한탕주의자들 같았다. 그런 까닭에 누가 복권 산다면 그 사람이 좀 얄팍해 보이기도 했다.
“이 사람, 자네는 행운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구만.”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온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웃는다.
“아니, 그거 당첨 되면 뭐할 건데?”
나도 참 야멸찬 놈이다. 서형의 비루한 대답이 돌아오길 바라며 그런 식으로 속을 떠봤다. 이를 테면 빌딩이나 한 채 사고, 고급 승용차도 하나 사고, 남들 다 하는 해외여행 좀 하고, 골프채도 좀 들고 거들먹거려야 하지 않겠나. 뭐 이런 세속적인 대답이 나올 거라 생각하며 물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동네 애들 마음놓고 공부할 도서관 하나 지어주려고.”
뜻밖에도 낄낄거리며 그런 말을 했다.
“뭔 도서관씩이나?”
나는 뭔 주제 넘는 소릴 하냐고 따질 뻔 했다.
도서관을 지어주는 건 서형의 소관이 아니다. 그건 일개 농사꾼이 꾸어야 할 꿈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그만 허허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웃으며 생각해도 농속에 진담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복권이 맞아 그가 도서관을 지어줄지 않을지는 그때 가봐야 알 일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와 달라 나는 좀 머쓱했다.
농이든 아니든 나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이 나이를 먹었다. 이 나이를 살도록 내 일신상을 위한 생각에서 벗어나 보지 못했다. 나와 내 가족 말고 다른 누군가의 꿈을 위해 어떻게 도움을 줘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나는 오랫 동안 월급쟁이 노릇으로 살아왔다. 그런 까닭에 빈 말로라도 언감생신 그런 꿈은 꾸어보지도 못했다.
“복권 한 장에 얼마지?”
오늘 아내에게 그 말을 했더니 아내가 복권이라도 사볼 듯이 물었다. 나는 우물쭈물하며 한 만원 안 할까, 했다. 내 대답이 미심쩍은지 인터넷에 들어가 보더니 복권 한 장에 2천원이라 한다. 우리는 맥없이 웃었다. 복권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이 남의 복권 사는 일을 비웃은 게 미안했다. 말 나온 김에 TV 화면 왼쪽 귀에 적힌 불우이웃돕기 전화번호에 ARS 한 통화를 걸고 말았다. 그러고 말았어도 서형의 말이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공부할 곳이 마땅찮아 하는 아이들을 보며 복권 당첨금으로 도서관을 지어주겠다는 생각이 왠지 부러웠다.
(교차로신문 2011년 8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