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꽃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권영상
책상 서랍을 열 때마다 목화송이를 봅니다. 서랍 귀퉁이에 목화 한 송이가 있지요. 소담스럽게 부풀어 올라 있습니다. 손으로 만지면 솜 안에 숨은 목화씨가 만져집니다. 오래 전, 고향 친척의 안마당에서 한 송이 얻어왔습니다. 하얗게 핀 목화를 보자, 갑자기 어떤 욕심이 일었습니다, 저걸 가져가 심어보고 싶다는.
그러고 보니 목화씨를 숨겨 들여온 문익점이라는 분의 마음에도 그런 욕심이 일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게도 그런 욕심이 일었습니다. 서울에, 그것도 아파트에 사는 제가 어디에 심을 곳이 있다고 그걸 따들고 왔을까요. 가져오긴 했으나 아직도 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의 일순간의 욕심 때문에 목화씨는 제 컴컴한 서랍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냅니다. 남의 목숨을 그렇게 내버려두다니요. 생각할수록 미안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목화씨를 생각하자니, 동백씨가 또 떠오르는군요.
동백씨가 저의 집에 온 건 정말이지 너무도 오래 전입니다. 한 30여 년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 저는 신문 신춘문예에 여러 해 동안 도전 중이었지요. 그러니까 문학의 열병에 한창 몸을 태울 때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운 좋게 어느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오랜 싸움을 끝낸 투견처럼 저는 지쳐 있었습니다. 그때 갑작스레 남쪽의 한 섬이 그리웠습니다. 왠지 거기 바다에 떠 있는 섬에 가면 뭔가 세상의 끝을 보겠다는 기대가 있었지요. 꽉 막힌 산맥과 대결하듯이 사는 강원도 사람이고 보면 펀하게 열려 있는 남쪽에 가면 속이 후련해져서 돌아 올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지요.
당선금을 들고 그 즉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때에 저는 처음으로 바다속에 홀로 떠 있는, 파도와 하루도 쉬지 않고 싸우는 섬에 올라 동백꽃을 보았습니다. 그 붉은 동백꽃만 보고도 제 몸안의 겨울이 다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제 몸이 붉은 봄으로 마구 변하는 듯 했습니다. 순간적인 느낌이었겠지만, 저의 지치고 막힌 가슴이 휑하니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져온 동백씨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대학을 마쳐가는 이때까지 제 책장 아랫서랍에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무려 30여년을 이 건조한 책장 아랫서랍 속에 갇혀 있는 겁니다. 잔인하다면 잔인하지요. 30여 년이나 이렇게 생명을 가두어 놓고만 있으니까요. 참 미안한 일입니다.
서울에 와 사는 동안 그중 두어 알을 빼어 베란다 화분에 심어 봤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동백나무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았지요.
“나중, 서울 기온이 남쪽 만큼 더워지거든 그 때에 심어주마.”
그러며 동백씨를 어머니가 주시고 간 바디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바디, 아시지요? 베틀로 베를 짤 때 실꾸리를 담는 기구입니다. 그건 어머니가 베를 짜실 때 쓰시던 것인데 제게는 소중한 어머니의 유산이지요. 그 안에 동백 씨와 화석 같은 동백잎 한 장도 함께 넣어두었습니다. 이제는 이 안의 씨앗이 숨이 막혀 그만 죽고 말았겠지,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식물학자가 만주의 한 호수 바닥에서 천 년이나 잠을 자던 연꽃 씨앗을 꺼내 꽃을 피웠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생명은 천년이고 만년이고 살아내는 모양입니다. 그걸 보면서 희망이라는 게 얼마나 기가 막힌 힘의 근원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만 있으면 죽을 일에도 죽지 않는 모양입니다. 백 년이든 이백 년든 그 뒤에 목화와 동백씨를 이 땅에 심어 꽃을 피우는 걸 보고 저도 죽어볼 생각입니다.
(교차로신문 2011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