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과장 뒤에 숨은 유머

권영상 2013. 8. 2. 16:21

 

 

 

과장 뒤에 숨은 유머

권영상

 

 

 

 

"옛날에 옛날에 방귀 잘 뀌는 며느리가 있었지."

옛날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해 놓으면 듣는 사람들 귀가 솔깃해진다. 옛날이야기라서 그렇고, 그 며느리가 며느리로서 삼가야 할 방귀를 잘 뀐다는 데에 호기심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아, 이 며느리가 시집을 오던 날 물독 앞에 앉아 방귀를 떠억 뀌었네. 그러자 찰랑거리던 물독이 부웅 날아갔지. 또 어떤 하루는 이 놈의 며느리가 부뚜막에 앉아 방귀를 뀌었는데, 그 바람에 솥뚜껑이 훌쩍 날아갔네. 이걸 안 시아버지가 참을 수 있나? 없지. 그래 가지고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냈네. 그러다 방귀로 큰돈을 번단 말을 듣고 다시 불러들였지.

과장이 심하다.

그러나 당시 며느리들 시집살이가 어떤 것인가. 귀머거리 삼 년, 눈 먼 삼 년에 벙어리 삼 년이다. 답답한 며느리들 가슴을 뻥 뚫어줄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조차 없었다면 시집살이 참아내는 며느리가 과연 있었을까.

 

우리 조상들은 과장을 즐겼다.

간 떨어질 뻔 했다든가,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는 말도 쉽사리 쓴다. 속상할 때면 까맣게 내 속이 탔다고 엄살을 부린다. 그뿐인가. 애가 끓는다고도 하고, 가난한 살림을 말할 때는 똥구녕이 찢어지게 가난하다고도 한다.

 

 

 

나무꾼과 도끼자루 이야기는 어떤가.

하루는 가난한 나무꾼이 나무하러 지게를 지고 산으로 들어갔다. 산속에서 그만 길을 잃고 헤매다 바둑을 두는 두 노인을 만난다. 나무꾼은 지게를 벗어두고 앉아 구경을 하다 정신을 차리고 마을에 내려와 보니 이미 수백 년 세월이 흘러갔더란 이야기.
마을 사람들 중엔 낯익은 사람이 하나 없고 자신이 누군 줄 아는 이조차 없더라는 과장. 이런 이야기의 배후에는 서민들의 고단한 인생살이가 있다. 잠시라도 먹는 걱정, 자는 걱정, 돈 걱정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나 보고 싶은 소망이 담겨 있다. 누구든 한 며칠 아니면 몇 달간 어디 아무도 모르는 곳에 훌쩍 가 있다가 슬며시 돌아오고 싶은 나무꾼의 심정을 겪었을 거다. 왜 지금의 우리들만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보희의 꿈도 과장이 심하다.

보희는 김유신의 누이다. 하루는 보희가 잠을 자다 꿈을 꾼다. 꿈에 경주 서악에 올라 오줌을 누었는데 오줌이 경주시내에 찰랑찰랑하도록 찼다는 이야기다. 보희는 나중에 제 동생 문희에게 이 귀한 오줌 꿈을 비단치마를 주고 팔아버린다. 문희는 그 일로 김춘추의 왕비가 된다. 그 일로 여러 명의 태자를 두어 왕권을 탄탄히 했다는 징조의 꿈이 이 꿈이다. 하지만 한 여인의 오줌이 경주 시내를 차고 넘치게 한다는 발상이 대범하면서도 유머 있다. 왕이 된 춘추가 백제를 멸하기 전 하루에 쌀 서 말과 꿩 아홉 마리를 잡수셨다는 내용도 과장을 즐기는 우리 조상들만의 표현이다

헛개나무와 복분자 이야기에도 심한 과장이 있다. 술독에 빠뜨린 헛개나무 한 도막이 술 성분을 다 마셨다는 이야기도 곧이곧대로 듣기엔 뭣하다.

뭐니뭐니 해도 우리 이야기 중에 과장의 백미는 복분자 이야기가 아닐까. 복분자딸기를 먹은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가 밤에 오줌이 마려워 요강 앞에 꿇어 오줌을 누는데 그 오줌줄기의 힘이 얼마나 세었던지, 요강을 뒤집었다는 이야기다. 해학적이다. 암만 오줌줄기가 세기로 오줌 요강을 뒤집다니!

 

우리 민족에겐 차고 넘치는 과장의 증후가 있다. 정직한 세상살이는 재미없지 않은가. 그런 까닭에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덤덤한 세상을 과장으로 살아내려 했다. 그게 웃음이다. 일찍이 웃음의 약발을 알았던 것이다.
(교차로신문 2010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