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엄마, 내 방 손대지마

권영상 2013. 8. 2. 16:13

 

엄마, 내 방 손대지마

권영상

 

 

 

 

방학을 맞아 딸아이가 집에 왔다. 반갑다. 넉 달만에 한 번씩 보는 딸아이는 이래저래 많이 성숙해온다. 말하는 품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의젓하다. 나이 스물을 훌쩍 넘겼으니 제 나이값을 하는 듯 하다. 그냥 밥을 먹기가 뭣한지 집에 오면 방학 두 달 동안 일거리를 찾아 제 육신을 움직인다.

지난 해는 점심값만 주는 곳에서 인턴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출퇴근하며 일했다. 그 곳 대표가 쩨쩨하다는 말은 가끔 해도 불평을 하거나 게으름을 피지 않았다. 대견했다. 속으로 졸업을 하면 저렇게 직장 생활을 하고, 또 저러다 제 짝을 만나면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아 좋은 어미가 되고, 사회인이 되겠지, 했다. 그러나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며 칠 전이다.

퇴근이 늦는 딸아이 방에 일이 있어 들어가려는데 아내가 내 앞을 막는다. 들어가지 말라는 거다. 내가 보아둔 책 한권을 꺼내러 간다고 하자, 그거나 들고 나오라며 다른 건 보지 말란다. 다른 게 뭔지 나는 그러마 하고 호기심어린 마음으로 딸아이방의 문을 열었다.

아내가 말한 그 ‘다른 것’이 뭔지 금방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입을 딱 벌린 채 그 자리에 박혀 섰다. 놀라워도 이렇게 놀라울 수 없고, 어이없어도 이럴 수는 없다. 대관절 이 모습이 대학을 다니고, 직장의 부조리를 꼬집는 딸아이의 방일 수 없다. 이건 사람의 소행이 아니라 풀더미를 파뒹기는 암탉의 소행과 다를 바 없다.

 

 

 

침대 위에 옷 한 짐이 널려 있다. 아침에 옷을 입어보고 맞지 않아 급한 대로 벗어두어서 그렇다는 거다. 그래, 그 점은 나도 인정할 수 있다. 나도 출근 때마다 옷을 맞추어 입는 일로 괴로워한 적이 많으니까. 그런데 침대만 그런 게 아니다. 방바닥에 벗어둔 옷이며 양말이며, 모자며 책이며, 받아둔 꽃이며 연필이며 휴지며, 스카프며 가방이 즐비하게 흩어져 있다. 그야말로 발끝 하나 재겨디딜 틈이 없다.

딸아이의 이런 버릇은 어렸을 때부터다. 책상 서랍은 책상 서랍대로 열면 그 안에 수십 개의 색펜이며 볼펜이며 지우개며 메모지며, 머리끈과 머리띠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게 보기에 흉해 나는 가끔 서랍이며 방을 정리했었다. 방바닥에 널린 휴대폰 충전기와 MP3, CD플레이어, 전기요, 이어폰 와이어들을 단출하게 묶어주고, 예닐곱 개의 가방은 가방대로 쉽게 걸도록 가방 걸이대를 따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도 불어나는 전자기기들과 그 와이어, 그리고 늘어나는 학용품들과 수없이 많은 옷들. 책상 위를 보던 나는 또 한번 놀랐다.

 

 

“엄마, 내 방 건들지마!”
딸아이가 노란색 메모지에 써놓고 간 메모다. 접착부분이 말려올라간 걸 보면 오늘 아침에 써놓은 게 아니다. 아내 말로는 매일 책상 위에다 얹어두고 가는 명령 아닌 명령이란다. 제 방의 이런 상태를 저도 미안하게 여기기는 여기는 모양이다.


내 직장엔 딸이 셋이나 있는 동료가 있다. 그에게 딸아이 이야기를 했더니 서른 먹은 놈도 그러는 데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나며 초연해한다. 생각해 보면 스무 살 나이치고 예전 우리가 가진 것에 비하여 가지고 있는 게 너무 많다. 오늘 신발장을 열어보고 내 구두며 운동화도 필요 이상으로 많은 걸 알고 놀랐다.


저번이다. 산문집을 내준 출판사 편집자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 화장품 가게에 들러 화장품 하나씩을 샀다. 그랬더니 덤이라며 뭔지 모를 세 가지의 화장용품을 봉투마다 가득 담아 주었다. 뭔가 넘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 속에 딸아이도 살고 있다.

 

(교차로신문 2010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