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우리동네가 배출한 재복이 아저씨

권영상 2013. 7. 1. 18:27

 

 

우리동네가 배출한 재복이 아저씨

권영상

 

 

 

서부역 느티나무 그늘에 가면 나를 태워갈 마을버스가 늘 먼저 와 있다. 그러나 버스에 오르면 좀체 가지 않는다. 모르긴 해도 출발시간이 정해져 있을테다. 그런데도 나는 나만 생각하며 ‘얼른 좀 출발해주지’ 하는 심정으로 조바심을 태운다. 그 때마다 옛날, 내 고향 시내 버스가 떠오른다.

 


문명의 세례를 전혀 받지 못하던 내 고향에 느닷없이 굴러 들어온 게 있었다. 시내 버스였다. 이 낯설디 낯선 시내 버스는 하루에 두 번 정기적으로 오갔다. 읍내에 꼭 갈 사람들은 그 버스를 놓치면 10여리 읍내 길을 걷거나 다음 날로 미루었다. 버스 없이 일생을 살아온 분들인데도 버스를 타본 뒤로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때도 버스는 일찍 오든 좀 늦게 오든 사람이 어지간히 차야 떠났다.


 

버스가 들어온 몇 달 뒤였다.

하늘이 놀라고 땅이 놀랄 일이 생겼다. 시내버스를 몰고 온 운전기사가 다름 아닌 우리 동네가 배출한 재복이 아저씨였다. 동네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재복이 아저씨, 멋져요!"

"재복이 아저씨, 공짜 버스 좀 태워줄래요!"

아이들은 재복이 아저씨가 너무 부러웠다.

 

 

 

 

부럽기는 마을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보게 재복이, 자네가 이렇게도 훌륭하게 출세를 했네 그랴!"

"우리 마을이 만들어낸 인물 중의 인물이네!"

그러며 반가워했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그냥 있을 분들이 아니었다.

"재복이 총각, 버스 운전대 잡은 거 보니 아주 한 인물나네 그려."

"거기 어머이는 을매나 좋을까, 아들 이토록 출세했으니."

재복이 아저씨가 버스를 몰고오는 바람에 마을이 들썩들썩했다.

경자 엄마는 한 술 더떴다.

"재복이 총각, 우리 경자 한 번 만나볼란! 애 낳을 만큼 투실투실하다네,"

그러며 재복이 아저씨를 놓칠까봐 안달을 했다.

 

 


근데 재복이 아저씨는 나도 잘 아는 분이다. 그이는 동네분들한테 그런 찬사를 들으면 ‘야, 고맙네요.’ 하고 말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지가 마 이래 출세해 가지고 왔잖습니까. 다 동네분들의 성원 때문이지만 지가 여서 만족할 사람인가요?"

그러며 능청을 떨었다.

사위 삼자고 성화를 대던 경자 엄마한테는 "경자 어머이, 경자 얼굴에 전 만족 못합니다." 그러며 웃겼다. 그 말에 경자 엄마도 안 졌다.

"하기야 이렇게 출세했는데 우리 경자한테 만족하겠는가. 하지만 만족이란 게 남자가 여자 요리하기 나름 아닌가!"

그러며 되받아쳤다는 일화는 아직까지 우리 동네에 전해 내려온다.

 


재복이 아저씨가 언젠가 무슨 바람이 났는지 어느 하루는 두 번 모두 공짜로 버스를 태워준 적이 있었다. 그건 마을 사람들의 소망이었고, 재복이 아저씨의 객기였다. 빛나는 은니를 번쩍이며 재복이 아저씨는 차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오늘 하루 마, 기망이입니다."

그 재복이 아저씨가 버스를 몰고 읍내로 돌아갈 때는 마을이 시끌벅적했다. 우리 동네가 배출한 운전기사답게 그는 타야 할 정류장에 탈 사람이 안 보이면 차창을 열고 소리쳤다.

 


“재덕이 어머이,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오잖구 뭐해요!”
그렇게 소리쳐 놓고는 달려나가 손을 부여잡고 뛰어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누구 하나 늦잡죄는 버스를 탓하지 않았다. 타야할 사람이 다 타고, 그들과 더불어 함께 가야한다는 게 그때 우리 동네 사람들의 생각이고, 재복이 아저씨 생각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랬다. 돈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다 같이 버스를 탔고, 조금 늦어도 함께 가는 걸 더 원했다.

 

 

재복이 아저씨는 그 후, 우리 동네가 낳은 인물답게 동부고속 운전기사를 하다 영예롭게 퇴직했다. 오늘따라 그분의 ‘더불어 함께 가야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교차로신문 2009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