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을지로 황해도집

권영상 2013. 1. 10. 00:18

을지로 황해도집

권영상

 

 

 

 

“축하 술 한 잔 낼 테니 나와요.”

선배 시인께서 전화를 주셨다. 말이 선배 시인이지, 실은 원로 시인이시다. 연세가 팔순 가까운 분이다.

요 며칠 전에 출간한 산문집 <뒤에 서는 기쁨>을 보내드렸는데 그걸 받고 또 못 참으신 거다. 그분은 청춘이시다. 다들 그런 일에 메일이나 전화를 이용하지만 그 선배시인께선 꼭 만나서 막걸리로 축하를 해주신다. 그러니 청춘이시다.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건 분명 건강한 일이며, 뜨거운 열정이 몸 안에 감돌고 있다는 뜻이다.

 

선배 시인께서는 한가한 분이 아니다. 예순에 박사 학위를 받으셨고, 저서만도 7,80권이 넘는다. 지금도 끌끌한 현역시인이시다. 시가 늙지 않는다. 젊은 시인들의 시처럼 그 안이 벅차다. 무엇보다 쉬지 않는 분이다. 쉬지 않는다는 게 뭐 꼭 아름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시골 태생인 내게는 본받을만한 미덕이다.

그처럼 촌음을 다투시는 분이 내게 막걸리 청을 가끔 해주신다. 물론 이번 술값은 선배시인께서 내실 차례다. 한번 내가 내면 다음은 선배시인께서 내신다. 이건 선배시인께서 만들어 놓으신 불문율이다.

 

“그 집에서 5시 반!”

선배 시인께서 그러시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 집. 오랫동안 그 집에서 선배 시인을 뵈었다. 거의 십여 년을.

나는 그 시간에 맞추어 부랴부랴 교문을 나섰다. 거기에 가려면 서울역에서 전철을 타야한다. 물론 그 시간, 선배 시인께서도 쌍문동 집을 나오셔서 전철을 타고 오실 거다. 충무로역 7번 출구를 나와 진양상가 아래를 걷는다. 설악산 다방을 지나 을지로 인쇄소 골목을 들어선다. 그 어느 시계점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들면 즐비하게 대폿집들이 나온다. 서로 마주 보는 대폿집 사이, 좁은 소로를 타고 한참을 걷는다. 꽤 긴 골목이니까. 그 긴 골목 끄트머리쯤에 ‘그 집’이 있다. ‘황해도집’.

 

 가끔 선배시인께서는 나보다 먼저 그 집에 도착하여 앉아 계신다. 약주 한 통을 시켜 마시거나 빈대떡 안주를 시켜놓고 원고를 보신다. 열이면 열 번 모두 단정한 양복에 중절모 차림이시다. 뭉툭한 손에 붓펜을 잡고 막 출간한 책에 서명을 하고 계시든가 아니면 그 날치 일기를 쓰신다. 일기장이나 원고뭉치, 붓펜, 새로 출간한 시집은 즐겨 메고 다니시는 가방 안에 있다. 어깨에 메는 가방인데 그 안엔 그 외에도 지우개 볼펜 연필이 가득찬 헝겊 필통이며 고문서적이 들어 있다.

“아, 어서 와요, 권선생!”

선배시인께선 그런 말투를 좋아하신다.

 

 

과거엔 황해도집 다락방을 애용했다. 좁은 계단을 오르면 되는데 조용하여 좋다. 그러나 겨울이면 서늘한 게 흠이다. 처음엔 조용한 다락방을 즐겨 애용했다. 하지만 대폿집이란 게 좀 소란해야 제 맛 아닌가.

그 어느 때부터 불빛을 찾는 풍뎅이처럼 소란을 찾아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아래층엔 다섯 개의 탁자가 있고, 20개의 의자가 있다. 자주 들르는 곳은 아니지만 이 집이 낯익어 좋다. 찾아오는 이들과도 어느 정도 낯이 익었다. 동네 인쇄소 직원이거나 상가 꽃집 사장님, 이발소 주인, 고향이 황해도인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들도 대강 나와 선배님에 대해 알고 있다. 선배 시인의 언성이 높아지면 말참견을 하거나 지난 날에 한 말까지 기억하여 바로잡아 주기도 한다.

 

여주인은 얼굴이 둥글고 넓적해서 한눈에 보기에도 인심좋은 분이다. 황해도와 관련이 없다. 황해도 태생 할머니가 하던 걸 오래 전에 상호 그대로 사서 운영한다. 고향 형수님같이 텁텁한 얼굴에 마음씨가 푸근하다. 술 손님들과는 달리 말사품에 끼어들지 않는다. 내가 혼자 와 선배시인을 기다릴 때면 황해도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주로 내가 먼저 묻는 편이다. 할머니가 돈이 좀 있는 걸 알고, 아들들이 그 돈을 탐낸다는 이야기를 하며 사람이 죽을 때까지 돈주머니를 놓으면 안 돼요, 그런 귀뜸을 해준다. 때로는 이 일도 힘이 들어서 몇 년 더 하고 말 작정이에요. 그러면서 한번 쓱 웃으시며 벌써 이런 생각한지도 여러 해랍니다, 한다. 그러다가 손님이 부르면 지짐이를 하거나 빈대떡을 굽거나 한다. 쉰 중반의 나이다. 대고 술을 팔지 않는다. 들락이는 이들의 주량을 대충 다 아는 편이기 때문이다.

 

“교수님하고 만나실 거죠?”

선배 시인께서 좀 늦을 때면 먼저 온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선배시인께서는 거의 칠순이 될 때까지 대학에서 시를 강의하셨다. 선배시인께서는 막걸리로 한다면 나보다 위시다. 막걸리도 단숨에 비우신다. 나는 맥주 마시던 버릇이 있어 단숨에 마시지 못한다. 언젠가는 20분 동안에 탁주 4병을 나누어 마셨는데, 취하여 정신을 잃은 건 내가 먼저였다.

선배님은 강단이시다. 글도 강단으로 쓰시고, 약주도 강단이시다.

 

 

“권선생! 기다리게 해 미안해요.”

이제야 들어오신다.

오늘도 3.5.7.9를 따라 막걸리 5병을 마셨다. 그러고는 일어섰다. 8시다. 우리는 그 골목을 쭉 따라 오던 길로 되집어 나가 진양상가 첫들머리에 있는 감자탕집으로 간다. 으레 우리는 거기서 감자탕을 앞에 놓고 소주 2병을 더 마신다. 10시가 조금 넘는다. 비로소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술집을 나서면 선배시인께선 내 손 잡기를 좋아하신다. 이제부터는 전철 승강장까지 나를 데려다 주실 일이 남았다. 나는 그 일을 막무가내지만 어쩔 수 없다. 선배님이 좋아하시는그 일을 막을 수 없다. 선배시인께선 3호선 승강장까지 나를 바래다 주시고, 전철이 떠나면 그제야 돌아서신다. 나도 때로 선배시인께서 타시는 4호선 앞까지 배웅해 드리곤 한다.

“권선생, 잘 가요.”

오늘은 선배시인께서 나를 배웅해 주신다.

내가 탄 전철의 문이 닫히려 하면 선배시인께선 승강장에 꼿꼿이 서서 내게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하신다.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헤어진다.

 

“술이 좀 취한다.”

이 시각은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어 좋다. 내가 술 취한 걸 전철이 다 알고 있다. 나처럼 술에 취한, 얼굴이 벌건 사내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다들 누군가를 만나 즐겁게 술에 취해 돌아가는 길이다.

“선생님 잘 가시고 있나요?”

하고 나는 문자를 넣는다. 그러면 답장 대신 수신음이 운다. 휴대폰을 받는다.

“권선생! 오늘 행복했다우.”

그러신다.

“저도 행복했습니다. 선생님이 불러주셔서.”

그렇게 작별인사를 또 한번 하고 끊는다.

 

황해도집이 좋다. 처음부터 나는 선배님이 원하시는 대로 좀은 수수한 그 술집에서 만났다. 그래선지 대접해 드리기도 좋고, 받기도 좋다. 술 생각이 나면 황해도집에서 선생님을 뵌다. 누가 막걸리를 만들어놓았는지 참 고맙다. 그 술이 내 경제에 딱 맞다. 또한 내 문학에도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