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의 신앙생활
완주의 신앙생활
권영상
완주가 퇴근 시간에 맞추어 왔다. 나는 학교 근처에 있는 음식점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쌈밥집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완주라 근사한 집에 가고 싶었다. 나는 그 일을 가지고 그가 올 때까지 고민하다가, 그냥 서로 편한 대로 학교 근처 쌉밥집에 가기로 했다.
완주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내가 다닌 시골 고등학교엔 한 학급이 여자반이었다. 완주는 그때에도 예쁘고 착했다. 살결이 유난히 희었고, 말씨가 조금 느린 듯 했지만 고왔다. 나뿐 아니라 모든 남자애들이 어떻든 참 예쁜 애다, 했었다. 소문에 들으니 그가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했다. 거기까지만 알고 나는 더 아는 게 없었다. 그때 완주는 집이 서울이었다. 그러니 그냥 잊혀지고 말았다. 나중에 내가 서울로 올라와 교편을 잡기는 했지만 소식을 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를 찾을 여가도 물론 없었고.
근데 엊그제 내게로 낯선 전화가 왔다.
“나, 완주야.”
“완주?”
나는 내게 ‘나, 완주야.’할 사람이 누군가하고 머릿속으로 더듬고 있을 때였다.
“어제 월간잡지에 실린 네 글 봤다.”
그랬다. 그의 말소리를 자꾸 듣고 보니 완주가 누군지 생각났다. 30여년 전의 그의 목소리를 내 귀가 기억해 냈다. 프랑스로 유학 갔다는 완주였다. 어디서 만날 데가 마땅치 않아 쉬운 대로 학교로 오라고 했다.
음식점에 앉아 날라다 주는 삼겹살을 불판에 올리며 완주를 봤다. 옛 모습 그대로였다. 살결도 하얗고, 가끔씩 식탁 위에 올려놓는 손도 가늘고 예뻤다. 옷도 레이스가 달린 하얀 블라우스에 진한 보랏빛 자켓을 입었다.
나는 술을 한잔 권했다. 사양했다. 삼겹살을 얹어 쌈 하나를 싸 입에 넣어 보이며 먹으라고 했다. 채식주의자라고 쌈만 먹겠다 했다. 나는 너무도 완주를 모르고 있었다. 나는 혼자 술을 마시고, 살겹살을 꾸역꾸역 먹고, 된장국을 떠 먹었다.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니?”
나는 잊었다는 듯이 그걸 물었다.
너무 청초해 보였다. 땀냄새 흔적이라고 없었다.
“나, 신앙생활하고 있어.”
“아, 신앙생활.”
'아, 수녀?' 그렇게 물으려다 그냥 '아, 신앙생활' 하고 말았다. 수녀라면 수녀 복장을 했을 텐데, 그건 분명 아니었다.
“성당에 나가지 않고 주로 집에서.”
“아, 집에서.”
실수할까봐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일종의 내가 성소자인 셈이지뭐.”
“성소자가 뭔데?”
“신께서 깃들어 있는 몸이라고.”
“처음 들어본다.”
처음 듣는다는 말에 그 증거를 밝히려는 듯이 다시 말했다.
“하루에 열 시간씩 기도해.”
“너, 정신있는 애냐?”
나는 그 말을 할 뻔 했다.
“직장 생활하면서 어렵겠구나.”
그 대신 이렇게 곡진하게 말을 바꾸었다.기도를 열 시간씩 하면 언제 직장에 다닐까.
“나 직장 생활 안 했어.”
완주가 특유의 고운 말로 조용조용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몇 번이나 속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뭔가 정신이 부실한 게 아닐까. 아퀴가 약간 풀린 것도 같았다. 이 나이에 직장도 안 다니고 집에 앉아 열 시간씩 기도나 하다니! 대체 뭘 먹고 살고 어디서 잠 잔다지?
“구순 어머니를 모셔. 어머니를 두고 어떻게 세속에 나가겠니?”
멀쩡한 듯 하면서 또 나를 의심케 했다. 세속이라니. 말투가 내가 살아오며 듣던 말과 전혀 달랐다. 문화가 전혀 다른 남의 나라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만큼 낯설었다. 내가 세속의 인간인 건 분명하지만 나를 그렇게 취급 하는 것도 별로 달갑지 않았다.
“그럼 기도만 하니?”
"응. 기도."
그 말에 나는 술을 한잔 마셨다.
“열 시간 동안 무슨 기도를 하는데?”
“하루 매일 100가지 일에 대해 기도해.”
“백 가지? 무슨 백 가지?”
“우리 사회 문제, 공부에 시달리는 애들, 왕따 당하는 애들이며 왕따 시키는 애들, 집 없는 노숙인들, 철거민들, 그런 이들을 위해 기도해. 우리나라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나라 문제?”
“응. 심각한 게 북한 핵문제잖아. 핵 전쟁만은 피하게 해달라고 제일 많이 기도해. 굶주리는 북한동포도, 넓게는 인구문제, 식량문제, 전쟁, 낙태, 자연훼손이나 동물학대, 너무 많어. 기도해야할 것들이. 너를 안 뒤부터 너에 대해서도.”
“아, 그래서 열 시간씩이나 걸리는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어이없었다. 아니, 일개 시민이 자신이 먹고 사는 문제를 접어두고, 이런 문제 때문에 그 귀중한 하루를 말도 안 되는 기도에 바치다니! 맛이 간 게 아닐까! 기어이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이는 몇이니? 잘 크구?”
나는 말머리를 돌렸다.
내 말에 완주가 고개를 저었다.
“유학하느라 그만 시기를 놓쳤어. 그런데 결혼도 어찌 보면 세속의 일 아니겠니?”
“세속의 일?”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만의 행복 추구, 그게 세속이지뭐. 행복이란 말도 분명히 세속적인 거구.”
“그래. 맞어.”
내 입에서 인차 그 말이 나왔다.
그 말은 분명 맞는 것 같았다. 나도 쉰 후반을 살고 있지만 결혼은 완주가 말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힘들게 직장에 다니고, 집안 일 때문에 모임을 피할 때도 거의가 가정을 위해서였다. 마치 가정을 잘 위하는 것이 가장의 책무인 것처럼 되어 있는 게 나였다. 그저 나 하나의 일신과 가족을 거느리고 염려하는 것. 나는 고만한 세상 안에 갇혀 사는 것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남에게 밑지지 않기 위해 나는 세상과 싸웠다. 그러기 위해 비굴해지고, 굴욕감을 참았다. 그래서 이 나이에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자식이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하고, 노후를 잘 보내고. 그게 행복의 전부인가.
생각이 거기 가 닿자, 여태까지 어이없던 완주의 말이 공감 가기 시작했다. 나는 한 번도 북한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 적이 없다. 철거민은 물론 노숙인을 위해서도 기도한 적 없다. 물론 기아와 낙태, 물 문제에 대해서도.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어머니 돌아가시면 어떻게 할 거니?”
구순이라신 완주 어머님이 걱정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큰오빠 거야. 돌아가시면 고모님 돌보러 가려고. 그 분은 아예 후손이 없으셔. 그 분도 나의 기도와 내 손이 필요하신 거야.”
프랑스 유학을 하고 왔다면 굉장히 으스대고 멋쟁이 행세를 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어보였다. 욕심이 없어 보여 그런지 그 예전의 청초한 얼굴 모습 그대로였다. 마치 별처럼 예쁜 소녀 같았다. 어쩌면 제대로 공부다운 공부를 하고 돌아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저녁을 끝내고 음식점에서 나와 커피를 마시러 갔다.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고?”
역시 나는 세속인이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말이 괜히 좋았다.
“영상씨는 글을 쓰니까 독자를 감동시키는 좋은 글 쓰게 해 달라고 기도해.”
“고마워.”
“이 세상에 와 내가 할 일이 그런 일이라고 생각해.”
“부럽다.”
완주에 대한 내 마음이 자꾸 변해갔다.
보통 사람들처럼 세상을 살지 않는 그가 처음 내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는데 갈수록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세상의 욕망에 말할 수 없이 오염되었다는 걸 알았다. 쉬지 않고 일 하고, 그걸로 배불리 먹고 편하게 사는 것. 사실 우리가 인생에 대해 화려한 수사를 늘어놓고 구차한 변명을 하긴 하지만 탁 까놓고 이야기하면 그것 아닌가.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출세를 위해 사는 것.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와서야 나는 내가 뭔가 틀린 방향을 헤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완주가 누리고 있는 그의 인생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이거.”
헤어질 때 완주가 묵주를 내게 건넸다.
“그냥 품고만 있어도 좋을 거야.”
나는 그걸 받아쥐고 헤어졌다.
전철을 타고 오면서 완주 생각을 오래도록 했다.
이 세상에선, 욕망에 젖은 우리들끼리만 서로 경쟁하고, 싸우고, 매몰찬 말을 하고, 배를 불리며 살면 된다. 그 판에 완주까지 끼어들게 해선 안 될 것 같았다. 마치 흐린 밤하늘에 언뜻언뜻 보이는 별처럼 이 서울 어느 곳에 그렇게 깨끗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