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2012. 11. 5. 16:52

 

모안리 골논

권영상

 

 

 

 

집에서 1킬로미터 되는 마을의 서쪽 경계에 땅재가 있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고갯길이라 그런 지명이 붙은 모양입니다. 그 땅재와 이웃한 산이 모안리 산입니다. 그러니까 땅재와 모안리 산이 만난 골짝에 우리 모안리 골논이 있지요. 그 산의 남향에 강릉 시내가 있고 북향이 경포호수입니다.

모안리 골논은 걸어 이십 리 경포호수를 한눈에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북향이라 해 일조량이 부족하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단지 향만이 그렇다는 거지 햇빛 들기는 같습니다.

이 모안리 골에는 위 아래로 다랑논이 층층이 있습니다. 그 중 가운데쯤에 우리 골논이 위치해 있지요. 위에서부터 반달배미, 샘논배미, 수렁배미, 큰논배미 이렇게 네 개의 다랑이 논이 우리 논인데 모두 팔백일흔일곱 평입니다. 아버지가 늘 그 논을 ‘팔백이른일고평 논’이라 불러 평수를 잘 압니다. 반달배미 아래에 어긋나게 샘논과 수렁논배미가 있고 맨 아래에 큰배미가 있지요. 큰배미는 제일 큰 논배미지요.

 

 

 

이들 논배미는 산과 산 사이에 있지요. 그래서 가끔 아버지를 따라가 보면 두 산에서 뻐꾸기가 마주 보고 주거니 받거니 웁니다. 벗국벗국! 하고 울면 이쪽 땅재 산에서 웃국웃국! 하고 맞받아 웁니다. 그들이 울면 때로는 소름 칩니다. 호랑이라도 한 놈 달려들 듯 싶어 옴짝을 못하지요. 주머니에 넣어온 볼가심할 누룽지 꼬독꼬독 씹는 소리마저 들을까봐 씹어도 귀를 막고 씹었지요.

움펑집 키다리 아저씨 말로는 모안리 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와 다랑이논 끝에 매어놓은 뉘집 암소를 물어갔다 그랬습니다. 때로 술에 취한 곰이 내려와 쟁기를 메고 우리 큰배미 한 자리를 다 갈아엎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아버지한테 들은 게 아니라 품앗이 일을 오는 움펑집 아저씨가 술 한 잔 마시면 그랬지요. 그러나 나는 어렸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혼자 골논에 나와 새를 볼 때면 그 말이 꼭 정말 같아 나는 뚝뚝 눈물을 흘렸지요.

 

“움펑집 아저씨는 뻥이나 치고!”

그렇게 소리치고 나는 얼른 벼포기 사이에 숨습니다. 호랑이가 나타날까봐 무서워서요. 어쨌거나 호랑이와 곰이 드나들 만큼 산이 깊은 곳에 모안리 골논이 있습니다.

이 모안리 골논은 아버지가 큰댁에서 분가해 나오셔서 산 논입니다. 어머니에 의하면 점심밥을 아끼려고 논일을 가면서도 읍내 장에 가신다 거짓말을 하며 아버지가 번 돈이라 하셨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과질(지금의 한과) 만드는 솜씨가 있어 그걸 만들어 보태셨다지요. 하여튼 분가하여 자력으로 사신 논이라 애착이 많은 땅입니다.

 

 

모내기를 할 때면 나는 다른 논엔 안 가도 모안리 골논엔 꼭 따라갑니다. 수렁논배미만큼 나를 즐겁게 하는 논이 없기 때문입니다. 놀이도 이만한 놀이가 있을까요? 수렁논은 쉰 평도 안 되는 논이지만 그 수렁에도 아버지는 모를 심었습니다. 모를 심으시러 수렁논에 들어가시던 아버지가 수렁에 빠지던 모습을 나는 똑똑히 보았지요. 처음엔 정강이가 쑥 빠집니다. 그럴 때 아버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또 한 발을 옮겨 디디면 무릎이 빠지고, 또 옮겨 디디면 힘다리가 빠지고, 가랑이가 빠지고 배꼽까지 쑥 빠집니다. 아버지는 사뭇 놀라셨지만 어린 나는 재미있기만 했습니다. 언젠가 이른 봄 수렁논 놀갈이를 할 때입니다. 쟁기를 끌고 앞서 가던 암소가 수렁에 빠져 배때기가 논에 척 얹힌 적이 있습니다.

 

 

“놀라지 마라. 놀라지 마라.”

수렁에 빠져보신 아버지는 암소를 달래시느라 일부러 느긋이 타이르십니다.

수렁에 빠진 소는 눈자위를 희번덕거리며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러나 몸만 움쩍움쩍할 뿐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그걸 지켜보는 아버지도 안절부절 입니다. 수렁에 소를 잃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린 내 생각에 밧줄을 가져와 암소의 몸뚱이에 묶고 잡아당기면 빠져나올 법도 할 텐데 아버지는 그 생각을 못하십니다.

 

“이랴! 이랴! 이누머 소!”

급기야 아버지는 고삐로 소의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립니다. 아픈 소가 몸을 움씰합니다. 그럴 때에 또 한 차례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립니다. 온몸을 들썩하던 소가 마침내 수렁 위에 솟구쳐 오릅니다. 그래서는 간신히 수렁논을 빠져나와 주둥이를 흔들며 투레질을 합니다. 푸르르 푸르르! 코안에 박힌 진흙을 뽑아내려고 연실 투레질을 하며 슬금슬금 수렁논 다랑이길을 걸어 나갑니다.

아버지도 힘이 쑥 빠지실 테지요.

논두렁에 나와 앉으셔서 담배를 뻑뻑 피우셨지요.

 

그래도 해마다 수렁논에 모를 심었습니다.

“몸이 제일 가벼운 놈이 들어가 심으면 되지요.”

동네 아저씨들은 망설이는 아버지를 재촉합니다.

그러니까 제일 몸이 가벼운 나를 들여보내 모를 심게 하라는 거지요. 내가 누군가요? 아버지께서 나이 마흔에 얻은 막내아들입니다. 귀한 막내를 암소가 빠지고 아버지가 빠지신 수렁에 집어넣을 수는 없지요. 망설이는 아버지를 보고 아저씨들이 내 등에 밧줄을 묶어서는 거길 집어넣습니다. 내 앞을 가로막는 아버지와 달리 나는 즐겁기만 했지요. 수렁으로 쏙쏙 걸어들어 가다보면 귀신이 잡아당기듯 빨려듭니다. 그러다가 아주 쑤욱 빠집니다.

 

“두 팔을 벌려라. 옳지!”

“고추 빠질라 꼭 움켜쥐고…….”

어른들은 가랑이까지 빠진 나를 보고 놀렸지요.

나는 그렇게 아저씨들이 보는 가운데, 아버지 보시는 가운데 수렁에 모를 심었지요. 수렁에서 나와 보니 모 심은 꼴이 콩켸팥켸입니다. 그래도 그걸 가지고 콩팔칠팔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수렁논 모내기는 내게 있어서는 잊을 수 없이 굉장한 사건이었습니다.

   

 

 

 

모살이가 되면 아버지를 따라 모안리 골논에 가끔 옵니다. 물을 보러 오지요.

아버지는 모가 죽은 빈자리를 때우시느라 논에 들어가시고, 나는 주로 샘논배미에 가놉니다. 샘논배미의 샘은 모안리산 쪽 논둑 밑에서 나옵니다. 가만히 앉아 보면 땅속에서 울컥울컥 하얀 모래가 치밀어 오릅니다. 올라온 샘물은 아버지가 만들어두신 샘길을 따라 빙 돌아갑니다. 샘물이 찬 편이니까 바로 논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구불구불 길을 내놓았습니다. 모가 크는 논으로 흘러가는 동안 미지근해지기를 바라는 거지요. 나는 아버지가 만든 물길을 헐고 내 기분대로 물길을 새로 만듭니다. 흙을 헤치면 흙탕물이 시커멓게 일어납니다. 그러다가 구름속 얼핏 보이는 여우별처럼 흰 모래가 언뜻언뜻 보이면 물도 금방 맑아집니다. 그걸 몇 번이고 헐었다가 새로 만들었다가 합니다.

 

그러다가도 심심하면 경포호수를 내려다 봅니다.

5월이면 고니나 기러기, 청둥오리 등의 겨울철새들이 다 가고 호수는 텅 비지요. 남아 있는 물오리들이나 풀쩍풀쩍 물을 튕기며 놀지요. 지금은 여유를 부리지만 늦가을이 닥쳐오면 기러기들은 먹는 일이 급합니다. 그들은 날이 저물면 호숫가 늪이나 골짝 논으로 모여들어 먹이를 찾습니다. 그래서 여기 지명을 모안리, 저녁에 기러기들이 모여드는 곳이라 부릅니다. 늦가을 모안리 골논에서 벼 베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면 호수는 온통 겨울철새들로 북적댔지요.

 

지금은 그 옛날의 아버지도 가시고, 모안리 골논만 남았습니다. 지을 사람도 없어 매년 묵정논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가보니 풀이 한 길입니다. 샘논배미의 샘도 말라 없어지고 수렁논배미의 수렁도 다 없어졌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으니 샘도 말라버립니다. 무엇인들 안 그렇겠습니까. 안 쓰면 다 말라버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