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나무꾼과 도끼자루

권영상 2012. 11. 5. 08:50

 

나무꾼과 도끼자루

권영상

 

 

 

 

여가를 내어 잠깐 고향에 내려갔다. 강릉을 떠나온 지 30년이 넘었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엔 거기가 고향인 줄 몰랐다. 그냥 내가 태어나 살던 곳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태어난 곳 이상의 절박한 고향의식이 없었다. 그게 솔직한 고백이다. 두 번째 이유는 객지에 나와 눈코뜰새 없이 사느라 고향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니 어찌된 일인지 일 없는 여가가 생겨 고향을 찾게 되었다. 고향도 말이 고향이지 예전의 아는 분들 다 떠나가고 없다. 젊은 세대들은 직장을 찾아 떠났고, 나보다 윗세대들은 그 사이 세상을 많이 뜨셨다. 거기다 농촌이었던 고향도 변했다. 개발붐이 일며 아파트가 들어서고, 전원주택마저 수없이 들어섰다.

 

 

고향 땅을 밟아도 고향 같이 느껴지지 않는 옛 솔밭길을, 밭두렁길을, 기차도 다니지 않는 예전의 철둑길을 걸었다. 늘 가던 호숫가 길도 걸었다. 나중엔 윗마을로 가는 길을 밟아 걸었다. 농노를 넓힌 길인데 차량 통행이 부쩍 늘었다.

윗마을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고 있을 때다.

빈 수숫대만 덩그렇게 남아 있는 저쪽 배추밭머리에 사람 둘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 그들은 마치 잃어버린 무얼 찾는 이들처럼 여기저기 손가락질을 하다가, 멈추었다가, 또 같은 방향을 향해 서 있다가, 그러며 오고 있었다. 그들은 몇 발자국 걸어오더니 다시 돌아서서 어딘가를 가리킨다. 아마 땅을 사러 온 외지인인 모양이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걸어 내 앞까지 왔다.

 

“아니, 아저씨 언제 내려오셨어요?”

어머니쪽 친척인 안초당 조카다.

안초당 조카는 나보다 한참 위지만 항렬이 낮은 탓에 나를 보고 존대를 한다. 나는 방금 내려온 이야기를 하며 어딜 다녀오시느냐고 물었다.

“아, 이분이 말이지요.”

안초당 조카가 함께 동행한 옆 사람을 가리켰다. 수염이 온통 하얀 분이다.

“연세가 여든 여덟이라는데, 저기 말이지요. 저기 아저씨 집 앞에 있는 관정 뚫은 데 있잖아요. 이분이 그 어름에 사셨다고 자꾸 그러시네.”

가뭄에 쓸 관정을 뚫어놓은 곳은 우리 집 쪽으로 내려가는 길 옆이다. 시에서 관정을 뚫어놓고 시멘트로 흰 건물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거기는 내 어릴 적부터 밭주인이 배추와 콩을 심었다. 그 밭 아래는 큰댁 논이다. 집을 짓느라 밭흙을 파날라 만들어진 논이다.

 

 

 

 

“거기서 사셨다면 그 집을 나도 보았을 텐데.....”

나는 거기에 집이 있었다는 말은 처음이다.

그러자 노인분이 나섰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살던 집에서 부엌문을 열면 대관령 희끗한 눈이 보였고, 대관령 바람탓에 비스듬히 동향으로 집이 앉았지요. 겨울이면 사랑방 창호문으로 파도소리가 들렸다오. 저기 관정쪽에 내가 살았다는 게 이렇게 분명한데 자꾸 아니라시니, 나 참.”

노인 분이 몇 번 말을 끊기는 했지만 뜻은 분명했다. 관정이 있는 자리에 집이 있었다. 멀지 않은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대관령 내리치는 바람 때문에 집의 향을 동쪽으로 움직였다. 틀림없이 다 옳은 말이다.

 

“그때, 저쪽 건너편 소나무숲은 없었다오.”

노인분이 건넛마을을 가리켰다.

“소나무 숲이 없었다면 그게 언제인가?”

안초당 조카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들 소싯적에 심었다는 걸로 아는데, 그 때가 어림잡아도 110년?”

그 일은 나도 아버지 살아생전에 여러 차례 듣던 말이었다.

그렇다면 이 낯선 노인이 110년전에 여기 살았다는 게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말이지요. 이 분이 여기 사셨다면서 동네 할아버지들 함자는 대충 아셔야 할 게 아니에요?”

안초당 조카가 나를 미심쩍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안초당 조카와 그 낯선 노인은 나를 만나기 전에 했음직한 말을 몇 차례 더 말을 주고 받았다. 그러더니 노인은 솔밭길을 걸어 윗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어째 정신이 좀 미심쩍은 사람 같네요.”

안초당 조카도 그 말을 남기고는 바쁜 일이 있다며 가버렸다.

눈빛이 또렷또렷한 사람은 아니었다. 걸음새가 바른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신에 문제가 있는 분 같지도 않았다.

 

나는 가던 길을 돌아서서 그 관정 보호건물까지 걸어왔다. 걸어오면서 그 낯선 노인을 자꾸 생각했다. 나도 여기 고향집에 살 때엔 밤이면 동녘 사랑방에서 철둑길 너머 파도소리를 들었다. 거기 강문 바다가 있었으니까. 겨울 아침 마당안 수돗물에 양치를 하다가도 툭 하면 대관령 흰눈을 보아왔다. 그렇다면 다른 마을을 우리 마을로 오해하는 건가.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노인을 모르고, 여기서 살았다는 그 노인은 우리 마을 어른들을 모르고.

나는 관정 창고 남향 벽에 기대어 섰다.

 

 

 

그때, 내 머릿속에 불쑥 옛날 이야기 ‘나뭇꾼과 도끼자루’가 떠올랐다. 한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그만 길을 잃고 헤매다가 바둑을 두는 두 노인을 만났다. 지게를 벗어놓고 바둑 두는 구경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도끼자루가 썩었더라는 이야기. 헐레벌떡 마을로 내려왔지만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나를 아시오.”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을 설명했지만 아무도 몰랐다.

“여기 이 자리가 우리 집 자리였소.”

라고 말했지만 역시 아무도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생각과 함께 문득 떠오르는 또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세월이 그렇게 흐르면 누가 오늘의 나를 알까?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까마득히 사라지고 말겠지 하는 그 생각.

실제 이곳이 내 고향이라지만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구할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내가 고향을 떠나가 사는 30년 동안 아이들은 새로이 나고 또 자랐으며, 외지인들은 수도없이 들어와 제 고향처럼 살고 있다. 옛날의 민가들도 다 헐렸거나 양옥으로 개량을 했고, 옛 마을의 몇 배나 되는 인구가 신축 아파트에 들어와 산다. 이 추세면 앞으로의 10년은 나뭇꾼이 겪은 백여 년의 세월에 맞먹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또 한번의 10년이 지나고 내가 고향이랍시고 이곳에 오면 그때에 나를 알아보는 이가 몇이나 될까.

 

 

 

좀전의 그 노인이 다시 떠오른다.

어쩌면 그 노인도 나무꾼이 갔던 그런 공간에 잠시 머물다 좀전에 내려왔을지 모른다. 그가 단 몇 시간을 머물러 있는 동안 이곳으론 백여 년의 시간이 벌써 지났다. 우리는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 세상을 지금 속절없이 살고 있는지 모른다. 옛날 이야기속의 나무꾼처럼 그 노인이 간 ‘그 공간’은 어떤 곳일까. 어쩌면 지금의 나처럼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가 살고 있는, 늘 시간에 쪼들리는 번잡한 도시일지 모른다.

나는 천천히 걸어 고향 집에 다다랐다.

“혹 내가 누군지 알아 보겠는가?”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장조카에게 농삼아 물었다.

“누구신지.......”

 

 

때로 창밖을 내다보면 ‘여기가 어디지?’ 할 때가 있다. 수십 년을 눌러산 집인데 문득 주변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여기가 정말 어디일까?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아내는 대체 누구이며, 현관에 벗어놓은 나의 신발은 정말 나의 것일까. 나라면서 여기 서 있는 이 ‘나’는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