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대한 오래된 기억
바다에 대한 오래된 기억
권영상
오랜만에 바닷가 모랫길을 걸어봤습니다. 거기가 강원도 옥계 바닷가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거기 한국여성수련원에서 저작권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행사가 오전이라 직장이 있는 저로서는 당연히 참여하지 못했지요. 나는 그날 수업을 다 마치고 고속버스로 혼자 내려갔습니다. 동해행 버스를 탔습니다. 오래 전 동해시, 그러니까 묵호항이 가까운 초등학교에 잠시 근무한 적이 있어 그때를 생각하며 승용차가 아닌 고속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때 나는 하숙집을 전전했는데 그 방황의 끝에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 위에 눌러 살게 되었지요. 내가 근무하던 학교가 산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근처 허름한 관사에서 잠을 자고, 밥은 좀 먼 음식점에 가 먹었습니다. 관사가 허름해도 창문을 열면 바로 발밑에 바다가 출렁거렸습니다.
바다는 컸습니다. 산 아래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산 위에 살면서 바다가 얼마나 큰지를 늘 실감했습니다. 그 바다가 봄이 시작되면 아침마다 해무를 만들어 육지로 밀어보냅니다. 하얀 해무가 해수면에서 뭉게뭉게 떠오를 때에 보면 놀랍습니다. 끓는 가마솥에서 솟아오르는 김이 그렇겠지요.
해무는 산 아랫동네를 집어삼키고, 위로 치밀어오르며 꽃이 잘 핀 복숭아나무며 버드나무들을 집어삼키고, 다시 그 위쪽에 있는 보리밭을 슬금슬금 밟으며 올라옵니다. 그래서는 내가 사는 몇 집 마을과 관사를 휙, 휘감습니다. 먼데서 보면 안개가 부드러운 것 같지만 막상 그 앞에 서면 그들은 잽싸고 위협적입니다. 사람을 감아채어 어이없는 곳에다 집어던질 것 같은 현기증을 느끼게 합니다. 마을을 다 삼키고 난 해무는 마지막으로 학교를 집어삼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속수무책입니다. 두렵지요.
등교하는 아이들은 그 해무를 뚫고 산아랫마을에서 산 위에 있는 학교로 걸어올라옵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산길이라는 게 대부분 가파른 벼랑길입니다. 우리는 벼랑길로 아이들을 바래러 가거나 초조히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교실로 달려가 아이들의 머릿수를 셉니다. 혹시 길을 잃은 아이들이 있을까 그게 무서웠지요. 혹, 나오지 못한 아이들이 있으면 산아랫마을에 사는 이장님댁으로 전화를 드립니다. 이장님은 그들 가정을 일일이 찾아가 아이들을 확인해 주시지요. 그 응답이 끝나면 비로소 첫수업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안개에 삼켜버린 교실은 좀 우울합니다. 마치 위력적인 자연에게 포위당한 느낌입니다. 안개는 짐승들처럼 교실 안을 흘끔흘끔 들여다 보며 으르렁댑니다. 창문이라도 비끗이 열면 달겨들어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이쪽에 앉아 장막처럼 둘러싼 해무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수업을 하다 말고 창가에 있는 풍금 앞에 가 앉습니다.
아이들 마음을 돌려보려고 노래를 부릅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시무룩한 아이들이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한 곡을 부르고 나면 또 연이어 부르고 부르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노래를 부르는 사이 아직 오지 못한 아이들이 한 명씩 한 명씩 교실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그들은 머리에 하얀 안개를 뒤집어 쓰고 들어옵니다. 그 아이들이 차례로 들어와 빈 자리에 다 앉으면 우리의 노래도 그칩니다.
해무는 그렇게 점심 나절까지 계속 됩니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교실 청소를 하다 보면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소리칩니다.
“안개가 갔다!”
“안개가 갔다.”
그러는 목소리 뒤로 또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해가 나왔다!”
그 소리를 들으면 아이들이나 어른인 나나 운동장으로 달려나갑니다.
해무가 희미해지는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 어디쯤에 뿌연 햇자국이 납니다. 해무와 바람이 실랑이질을 합니다. 그러는 어느 사이 훌쩍, 빛 한줄기가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운동장이 조금조금조금 햇빛에 드러나서는 이내 햇빛 세상이 됩니다.
정말 거짓말 같은 세상이 돌아오면 몇 집 안 되는 학교 울담 밖 마을에서 수탉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암탉들을 데리고 사는 수탉도 한숨을 내쉬는 거지요. 간신히 수업을 마친 1학년 아이들이 재깔거리며 교문을 나섭니다. 마을 아주머니들의 해무에 눌려있던 좀은 거칠고 높은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이런 날의 하루는 안개가 걷혀야 비로소 시작됩니다.
안갯속에서 기운 그물을 머리에 이고, 새참거리를 이고, 술주전자를 손에 들고 산을 내려갑니다. 날이 번해졌으니 고기잡이를 나가야지요. 산비탈 보리밭에서도 그제야 종달새가 날아올라 뱃종뱃종 소리칩니다.
그 학교에서 꼭 1년을 있었습니다.
그 학교를 떠나기 며칠 동안은 산 아래 바닷가 마을에 일부러 자주 갔습니다. 내가 발령을 받아갈 곳이 경기도 이천이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오기 어렵지요. 우선은 이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포구에 나가 가자미회도 먹고, 바닷물에 손을 여러 차례 적셨습니다. 이제 다시 올 수 없는 아름다운 마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잊을 수 없는 어달리입니다. 물고기에 가 닿는 마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끝에 고속버스는 동해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묵호입니다. 내가 잠시 머물렀던 어달리는 이 묵호 해안의 어촌입니다. 어달리의 인근 북쪽에 망상 해수욕장이 있습니다. 그 북쪽에 내가 가려는 옥계 한국여성수련원이 있습니다. 나는 버스터미널에서 다시 옥계행 버스를 타고 가 거기에서 다시 택시를 잡았습니다. 수련원에 들어서니 밤 8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프론데스크에 문의하자 세미나를 마치고 정동진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떠났다는 겁니다. 물론 중간중간 전화를 못한 내 책임도 있지만 기다려주는 이 하나 없다는 게 서운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었으니 정동진까지 또 갈 생각이 없어 로비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대구에서 오신 하청호 시인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나보다 먼저 오셨는데 술 마실 게 뻔해 혼자 남아있다는 겁니다. 나는 문단 선배이신 하 시인을 모시고 바로 곁에 있는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철썩이는 바다를 옆에 두고 같이 모랫벌을 걸었습니다. 얼마만에 걸어보는 여유로움인지. 저녁밥도 싫고, 술도 싫고, 번다하게 웃고 떠들 일도 싫어 바닷길을 걷는 이 깜깜한 밤의 여유로움. 시월의 바다는 춥지도 덥지도 않습니다. 살아온 일을 떠올리기에 좋은 날씨입니다.
걷다가 힘들면 주저앉아 하청호시인과 함께 동인활동을 했던 예전의 일을 추억하고, 이미 퇴직하신 하 시인의 경험담도 듣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슬쩍슬쩍 여쭈어보며 바닷가의 밤을 보냈습니다. 처음엔 정동진으로 가버린 일행을 탓했지만 이렇게 걷고 보니 그들이 고맙기만 했습니다.
나는 모랫벌에 앉은 하 시인을 두고 혼자 어두운 모랫벌을 저쯤 걸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어달리가 그리워졌습니다. 그때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얼마나 컸을지, 그 학교며 그 바다는 어떻게 변했는지, 그때 그 관사며 그때 그 보리밭이며 이장님이 그리웠습니다.
손을 꼽아보니 아득히 32년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