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잠에 관한 나의 노트

권영상 2012. 9. 3. 13:44

 

잠에 관한 나의 노트

권영상

 

 

 

 

1996년 여름이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10살 때. 그 무렵 한창 유행병처럼 서울을 휩쓸던 바람이 있었다. 영어 열풍이었다. 우리 아이도 어쩌자고 그 대열에 들어섰다. 그때 강아지를 위한 영어학원이 있었다면 강아지들도 영어학원에 보내졌을 것이다. 너도나도 영어였다. 일부 엄마들은 국내영어로 만족을 못 느꼈다. 우리 아이가 다니던 어학원도 그 열풍을 외면하지 못했다. 끝내 해외 조기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우리도 미국 한 번 보내볼까?”

학원에 다녀온 아내가 내게 심각하게 물었다.

하나뿐인 딸아이. 어린 나이의 자식을 먼 미국에 보낸다는 건 처음 부모된 우리에겐 언감생심,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영어가 암만 급하다 해도 4주씩이나! 그건 안 되지. 애를 그 먼데로 어떻게.”

내가 그렇게 고개를 저었다. ‘맞어.’ 아내도 그랬다.

 

그렇게 그 일은 끝났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우리들의 생각이 변했다. ‘애를 그 먼데로 어떻게’ 라던 생각이 ‘혹 2주 정도라면 모를까?’ 로 바뀌었다. 그러고 또 사나흘이 지나자 ‘부모 곁을 떠나본 아이들이 일찍 성숙한다네.’로 남의 말을 들먹였다.

“그럼 한번 보내 보지뭐.”

결국 그해 여름 방학, 뉴욕 근처 미국의 한 대학이 운영하는 부설어학원에 딸아이를 보냈다. 아이는 출발을 했고, 학원 담당자는 거의 매일 아이들의 소식을 전해왔다. 아이 없이 못 살 것 같은 우리도 변했다. 일 주일쯤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3주째로 막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여,여, 여보!”

난데없이 직장으로 아내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런 일이 여태 없었다. 암만 급한 일이 있어도 직장으로 전화를 거는 아내가 아니었다. 전화 너머의 아내 목소리가 떨고 있었다.

“기숙사에 불이 났대!”

아내가 불쑥 그랬다. 기숙사라면 아이들이 잠자는 곳이다. 불이 나면 어떻게 되나. 가슴이 일시에 무너지는 듯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딸아이가 자는 기숙사에 불이 나다니! 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아내의 마음을 진정시킨 뒤 차근차근 물었다. 아내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담당자에게서 온 전화의 전말을 이야기 했다.

간밤 딸아이 방에서 놀던 아이들이 침대 맡 전등불이 밝아 휴지를 뽑아 전등을 덮어놓았다는 거다. 그러고는 다들 헤어져 잤는데 그게 과열로 인해 불이 붙었다. 한 방에 세 명씩 잤는데 연기에 놀라 깬 두 아이는 불이야!를 외치며 방을 빠져나갔는데.

 

 

아내가 거기서 말을 멈추었다.

“어, 다들 빠져나갔는데. 우리 애는?”

내 말에 아내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 난리에 선생님들이 달려가 보니 우리 애만 그 연기 자욱한 침대에 누워 있더라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 뒷말이 무서웠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덥썩 껴안고 연기 속을 빠져나와 응급실에 데려갔는데도 쿨쿨 자고 있더라지 뭐야. 어쩜 좋아.”

아내는 울음 반 한숨 반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뭔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변을 당하지 않은 것만도 너무 다행스러웠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자, 먼저 퇴근한 아내가 나를 기다렸다.

“어떻게 잠자는 것조차 당신을 그렇게 닮았는지 몰라!”

급기야 아내가 울었다.

 

 

 

오래 전이다.

부산에서 문학 모임이 있었다. 일단 부산에서 모임을 갖고, 두 시간 거리 고성까지 가기로 돼 있었다. 코스가 힘드니까 김해공항을 이용하자는 거였다. 김포공항 가까이 사는 이가 우리 일행의 항공권을 예매했었다.

토요일 오후 2시반 비행기였다.

 

그 때는 토요일도 근무하던 때였다. 나는 직장에서 든든히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출발할 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다 잠시만, 하고 눈을 붙였다.

그런데 그날 나는 김포공항이 아닌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아내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만 잤어.”

어이없어한 건 나였다.

잠깐, 하고 의자에 앉아 눈을 붙였는데 깨어나 보니 비행기 출발시간이 지나있었다.

 

 

그 때의 일을 아내가 잊을 리 없었다.

“어쩌면 잠자는 습관까지 부녀가 그렇게 닮을 수 있을까. 닮아도 어떻게 그런 것까지! 누구는 잠을 자느라 비행기 시간을 놓치고, 누구는 잠을 자느라 제 방에 불이 난 것도 모르고. 세상에!”

아내가 성화를 댈만했다. 아내 말대로 어떻게 나의 잠습관까지 자식이 물려받을까. 매운 연기 풍기고, 불이야!를 외치는 방안에서 어떻게 태연히 잠을 잘 수 있을까.

딸아이는 나를 많이 닮았다. 뭉툭하게 못생긴 내 코며, 내 큰 발이며, 손가락 굵은 마디며, 덤벙거리는 것, 음식 가려먹는 것까지 그대로 닮았다. 그 정도인 줄 알았지 잠 습관까지 이렇게 닮은 줄은 정말 몰랐다. 잠을 많이 자는 게 아니다. 수면상태가 문제다. 한번 잠 들었다 하면 하늘이 두 쪽 나도 모른다. 막말로 죽었다 깨어난다.

 

“타고 난 복이야.”

잠이 예민한 아내는 내 수면을 부러워했다.

그때는 나의 ‘죽었다 깨어나는 내 잠’이 좋은 줄만 알았다.

 

 

 

 

그 짧은 어학연수가 또 무슨 인연이 되었던 모양이다. 딸아이는 그 후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기관지가 좋지 않아 따뜻한 쪽을 찾아 아틀란타 소재 사립대학으로 갔다.

딸아이가 없는 빈집에서 아내와 나는 단 둘이 살았다.

세상이 바뀌고 정권도 바뀌었다. 개성과 금강산이 열렸다. 일반인들도 그렇지만 직장에서도 금강산과 개성 관광을 무슨 성지순례처럼 했다.

 

 

“황진이 놀던 박연폭포, 한번 가봅시다."

<시와 여울>이라는 시 쓰는 동인 중의 한 분이 개성에 가보자는 제안을 했다. 개성 관광은 비용도 크게 들지 않았다. 다른 여행과 달리 북쪽 관광은 혼자 가기 어렵다. 위험해서 가족과 같이 가기도 뭣했다. 그래선지 다들 선뜻 응했다.

이윽고 날짜와 시간이 정해졌다.

그날 광화문 앞에서 관광버스가 3시에 출발한다 했다. 직장 일을 얼른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방을 챙겨 나가려다 보니 시간이 좀 일렀다. 전철로 가면 30분, 그러고도 한 시간 정도 남아 있어 쇼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아니, 여태 뭘 하고 있어!”

누군가 나를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퇴근하는 대로 예식장에 들렀다 집에 들어온 아내였다.

나는 놀라 시계를 봤다. 2시 30분.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그냥 잠들어버린 거였다. 세상에 이런 낭패가! 가방을 들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아파트 정문을 나가며 또 시계를 봤다. 촉박했다. 택시를 잡았다. 남부터미널 역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교대역쯤에 갔을 때는 이미 버스 출발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없이 택시에서 내렸다. 허탈한 마음으로 개성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 일이 이번엔 딸아이에게 생겼다.

 

2학년 봄학기를 마칠 무렵 딸아이의 전화가 왔다. 귀국 비행기표를 예약이 놓았다는 거다. 우리는 힘들게 봄학기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는 딸아이를 기다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먹고싶다는 잡채도 해놓고, 콩국수도 준비해놓았다. 그뿐이 아니다. 경주 여행을 위한 열차 예매도 해놓고 있었다. 귀국하는 날엔 인터넷에 들어가 딸아이가 탄 비행기의 비행 상황을 체크하며 영종도 도착을 기다렸다. 드디어 비행기가 영종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 때를 맞추어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여기 학교야!”

영종도가 아니고 대학 기숙사였다.

밤새워 짐을 싸놓고 잠을 자다 그만 아침 비행기를 놓쳤다는 거다.

우리는 또 한번 아연실색했다.

무엇보다 다급한 게 기숙사다. 여름 학기생들을 위해 방학 다음 날은 기숙사를 비워줘야 한다. 당장 어디 가 잠을 잘 곳도 없다. 뉴욕을 제외하곤 미국의 대학들은 대개 도시에서 멀다. 딸아이의 학교도 그렇다. 어디서 하룻밤 잔다고 해도 비행기 좌석은 또 어떻게 될지.....

 

 

우리의 걱정과 달리 딸아이는 어찌어찌하여 며칠 뒤 귀국했다.

“너나 이 아빠나 잠 때문에 큰일이구나.”

돌아온 딸아이에게 나는 근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비행기 놓친 게 내겐 행운이었어. 태안 앞바다에 유출된 기름 청소하러 가기로 했거든.”

딸아이는 천연덕스러웠다.

“태연한 것까지 어쩜 제 아빠를 저리 닮았을까.”

아내가 어이없게 웃었다.

웃지 않고 울면 뭐하겠는가.

 

근데 이 고약한 잠습관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누가 내 뇌의 칩속에 이런 씨앗을 심어놓았을까. 형님들이나 누나들, 부모님한테서도 이런 경악할만한 잠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 잠의 원조가 오로지 나인가.

나중, 나이를 많이 먹어 꼭 가야하는 그 먼 길을 갈 때에도 그만 잠 때문에 갈 길을 놓치고 다시 돌아오면 다들 뭐라할까. 분명 뉴스감이겠다. 부활한 줄 알 테니까. 헐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