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혼자 주무시는 아버지가 적적하실까봐

권영상 2012. 8. 29. 09:30

 

<이 작품 이렇게 썼다>

 

혼자 주무시는 아버지가 적적하실까봐

  권 영 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만에 아버지가. 꿈쩍, 하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 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 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이 <담요 한 장 속에>는 아주 오래 전에 썼다. 이 시가 실려있는 <밥풀>이 1991년에 나왔으니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이전에 쓰여진 시가 아닌가 한다.

 

시골 우리 집은 여덟 칸 집이다.

아버지가 결혼을 하셔서 분가해 나온 집이라 하니 그때만 해도 꽤 큰 집이었다. 아버지가 언제 태어나셨느냐? 구한말 순종 재위 기유년 시월에 나셨으니 서력으로다 1909년이시다. 시방 살아계신다면 아버지 춘추 112세. 아, 막막하도록  아득하고 또 아득한 오래 전의 일이다.

어머니와 결혼하셔서 큰댁에서 분가해 나올 때가 아버지 22살 때셨으니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이다. 그렇게 분가를 해 나오시고 나이 마흔에 아버지는 막내아들인 나를 낳으셨다. 내 나이 10살쯤 때를 더듬으면 그때가 서기로다 1960대쯤이다.

 

내 10살 먹은 나이 때가 참으로 멀다.

그 무렵 우리 집 식구가 모두 몇이냐? 열둘의 대식구였다. 그 밥을 아버지가 대셨다. 식구들이 많으니 방 배정이 있었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주로 안방과 뒷방에 거처를 했다. 어린 조카들과 형님은 앞뒷방을 튼 사잇방에, 아버지는 사랑방에 홀로 거처를 하셨다. 어머니는 사랑방에 혼자 주무시는 아버지가 적적해 하실까봐 내게 어릴 적부터 사랑방에 가 자도록 권고했다. 아버지도 막내 아들인 나를 데리고 자고 싶기도 하셨을 테다.

 

근데 그 시절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냐? 엄한 농사꾼이셨다. 장정을 따로 둘이나 거느릴만큼 대농이셨는데 담뱃대 담배를 아주 많이 피셨다. 또한 내게 천자문을 읽어주셨고, 내 공부가 원만치 못하면 목침 위에 나를 올려놓고 종아리를 가불겨 대시곤 했다.

 

<담요 한 장 속에>는 그런 시절의 이야기다.

아직 아버지가 무섭기만한 어린 아들과, 아들을 아끼는 아버지가 함께 기거하는 사랑방. 이것들이 이 시의 공간배경이며 등장인물들의 관계도이다.

 

한 방에서 잔다고 내 이불 따로, 아버지 이불 따로가 아니었다. 그냥 목화솜을 넣은 묵직한 이불속에 아버지와 나란히 누워 잤다. 아버지는 주무시다가도 어린 내가 도탑게 여겨지시면 내 맨숭맨숭한 사타구니에 손을 넣어 내 걸 한번씩 쓱 만져보시곤 했다. 그때 아버지 표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주 만족스러워하셨을 거다.

 

그렇게 주무시다가도 일어나 담배를 피실 때면 이불 밖으로 삐쳐나온 내 발이며 팔을 꼭꼭 덮어주셨다. 나도 긴긴 밤 오줌이 마려워 오줌을 누고 다시 드러누울 때면 아버지 거친 발을 이불로 꼭꼭 덮어드렸다.

 

그 무렵의 아버지 연세가 쉰은 되셨을 거다. 지금 내가 그 나이 되어 봐도 밤잠이 도막도막 끊긴다. 아버지도 자주 깨셨는데 그때마다 담뱃쌈지에서 잎담배를 꺼내 부벼서는 담배를 피우셨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걸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일곱 자 사랑방이 밤새도록 담배 연기로 매옥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간접흡연을 하고도 담배 피는 일을 지금껏 좋아하는 걸 보면 아버지께서는 정말 좋은 몸을 내게 주시고 가셨도다. <오늘의 동시문학>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