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여자가 혼자 사는 일

권영상 2025. 6. 3. 19:16

 

 

여자가 혼자 사는 일

권영상

 

 

일주일 만에 아내랑 안성 집으로 내려갔다.

그분이 그분 댁 뜰에 나와앉아 일을 하시다 우릴 보고 일어섰다.

나는 천천히 마당에 차를 주차했다. 그분이 목발을 짚고 다가왔다.

“그 동안 너무 허전했어요. 외롭기도 하고.”

반갑게 우릴 맞았다.

우리도 마치 오랜만에 보는 고향 어머니처럼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그동안 수술한 발목은 많이 좋아졌는지, 식사는 잘하고 계시는지, 안부를 물으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채 한 달도 안 된 이웃이다. 그런데도 그사이 정이 들었다.

본디 이 집에 사시던 할머니는 별났다. 어찌나 별났던지 제 집 앞 길도 제 땅이라며 그 안에 들어서지 못하게 했다. 그분이 가고 아주머니가 이사를 오셨다. 아주머니라지만 여든이 가까우신 분이다.

요기 가까운 산밑 동네에서 고추 농사를 지으며 사시다가 사정이 있어 이쪽으로 오셨다고 했다. 얼른 보기에도 마음씨 좋아 보이는 시원시원한 분이다. 우리가 가꾸는 요 쪼꼬만 텃밭을 보시고는 ‘이 콧구녕만한 밭에 뭔 오만가지를 심었대!’ 하시며 즐겁게 웃으시던 분이다.

사나흘 머물다가 서울로 올라갈라치면 목발을 짚고 뒤뚱뒤뚱 걸어 나오신다.

“운전 조심히 하고 갔다가 이내 와요. 근데 내가 허전해서 그동안 어찌 살꼬.”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이웃에게 속마음을 이렇게 훤히 드러낼 정도로 수수한 분이시다.

 

 

오늘은 아침을 먹고 나온 나를 부르셨다.

“선풍기 뚜껑 좀 열어줘요. 날개 청소를 할라나 당최.”

내 손에 드라이버를 쥐여주시며 현관 탁자에 올려놓은 선풍기 앞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걸 열어드리고 나오는데 창문 아래 쌓아놓은 나뭇단이 보였다. 도끼로 팬 장작 땔감이라면 땔감이고 아니라면 아닌, 장작보다는 긴 나뭇단이다.

“아, 그거 우리 아저씨가 고추밭에 만들어 쓰던 고추 지지대라우.”

나는 끝을 뾰족하게 깎은 오래 된 나무로 만든 고추 지지대를 들여다봤다.

지금은 나도 그렇지만, 누구나 시중에서 파는 알루미늄 고추 지지대를 사다가 쓴다. 물론 생각보다 가격도 저렴하다.

“울 아저씨가 공들여 쓰던 지지대라.”

아주머니가 말끝을 흐렸다.

 

 

떠나가신 남편분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그걸 하필이면 주무시는 창밖에 쌓아놓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남편분이 거기 머물러 있다는 생각으로 외로움을 이기고, 그리움을 견디시려는 게 아닐까.

50년을 남편분과 함께 사시던 집을 떠나올 때 굳이 이제는 쓸모도 없는 이걸 챙겨오신 아주머니의 마음을 엿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찡했다. 그 때문이 아니라면 이 오래된 유물을 창문 아래에 쌓아두실 리 없지 않은가. 이웃이 일주일 집을 비워도 이렇게 허전해하시는 분을 두고 떠나가신 남편은 어떤 분이실까.

따님이 택배로 보내준 거라며 과일을 가져오시고, 동네 친구들이 준 거라며 소금에 절인 오이도 가져오시는 아주머니의, 우리에게 의지해 보려는 마음이 애처롭기만 하다.

 

 

“오늘은 저걸 고쳐 지으러 목수들이 와.”

고추 건조기를 가리켰다.

며칠 전에 고추 건조기 지붕을 만든다며 목수 둘이 와 뚝딱거리고 갔다. 근데 물자를 줄이려고 건조기에 부착된 조절 레버들이 비에 젖어 누전되는 건 생각지 않고 추녀를 짤막하게 내놓고 갔다.

우리가 서울로 올라간 사이, 전기 배선공이 와 보고 이러면 사용 허가가 나지 않는다는 말에 목수를 다시 부르셨단다.

“줄 돈 다 줬는데 목수들이 왜 그래요?”

아주머니가 한숨을 내쉬셨다.

눈속임하는 목수를 탓하려는 게 아니고, 냉혹한 현실을 여자 혼자 살아야 하는 아주머니의 인생 때문에 내 마음마저 적잖이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