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독특한 스토리 텔링
<머릿말>
신라의 독특한 스토리 텔링
권영상
1.
황룡사에 대한 기록은 이렇다.
14년 봄 2월, 임금이 유사에게 명하여 월성 동쪽에 새 궁궐을 짓게 하였는데 누런빛 용이 그곳에서 나타났다. 임금이 기이하다 여기어 사찰로 고쳐 짓고 황룡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삼국사기 제4권 신라본기 제4. 진흥왕 14년의 일이다.
이걸 좀 더 덧붙이면 용궁의 동쪽에 명활산이, 서쪽에 선도산, 북쪽에 금강산, 남쪽에 남산. 이 네 산의 정상에서 서로 마주 바라보이는 교차점에 궁궐터를 잡았다. 그런데 그곳은 궁궐을 짓기에 알맞았으나 하필이면 늪이었다. 늪을 메우기 위해 흙을 퍼 나르고 바위를 굴려 넣던 중에 천둥 치고 비 내리던 어느 날, 늪에서 황룡이 나타나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걸 괴이하게 여긴 왕이 궁궐 짓는 일을 포기하고 절을 지었는데 그 절이 황룡사다. 짓는 데만 무려 17년이 걸렸다.
이로써 삼국의 대표 사찰로 백제에 미륵사가 있고, 고구려에 정릉사, 신라에 황룡사가 있게 되었다.
이것이 황룡사에 얽힌 스토리텔링이다.
근데 이 장대한 황룡사에 벽화를 그린 이는 솔거다.
솔거에 관한 이야기는 분분하다.
당나라 화가 승요가 신라로 귀화해 이름을 솔거로 개명했다고도 하며, 그가 분황사 ‘관음보살도’ 진주 단속사의 ‘단군 초상’을 그렸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진흥왕 시절로부터 100여 년의 거리가 있어 신뢰가 덜하다.
그보다 간략한 솔거에 대한 기록을 보자면 출생 시기도 출생지도 모르는 ‘미천한 출신의 신라 화가’, 그뿐이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솔거가 그린 노송도에 대한 신이한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17년에 걸쳐 완공한 이 ‘거대한 황룡사라는 건축물과 그 벽화를 그렸다는 미천한 화가 솔거’라는 구도다. 왕명에 의해 지어진 웅장한 황룡사쯤이라면 거기 벽화도 그림 공부를 제대로 한 당대의 유명한 화가쯤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하필 출신이 미천한 화가일까.
이 이야기는 이쯤에 두고 에밀레종으로 넘어가 보자.
2.
에밀레종은 달리 봉덕사종이라고도 부르는 ‘성덕대왕신종’이다.
이 종은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으나 20여 년이 지난 혜공왕 때인 771년에 완성하였다.
종의 무게는 18.9톤. 종을 만든 여러 명문은 동종의 표면에 돋을새김 되어 있다. 성덕왕의 공덕을 종에 담아 대왕의 공덕을 기리고, 종소리를 통해 그 공덕을 널리, 그리고 영원히 나라의 민중들에게 흘러 퍼지게 해서 국태민안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발원이 담겨 있다.
이만한 종에 이야기가 없을 수 없겠다.
당시 이야기꾼들이 끼어든 이야기의 틈바구니는 제작 시간이 무려 20년이나 걸렸다는 점일 테다. 아버지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종이 대를 넘겨 자식대에 가서야 완성되었다면 거기엔 필시 곡절이 있음직하다. 당시거나 아니면 그 후대 이야기꾼들이 만들어 낸 스토리텔링을 보자.
종을 만들기 위해 전국에서 모금 운동이 일었다.
그렇게 모금하던 중 한 마을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를 만났는데 그 엄마가 말했다.
“우리는 시주할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오. 있다면 이 아기뿐 가져가려면 아기를 가져가시오.”
모금을 마친 뒤 시주물로 종을 만들었지만, 종은 원하던 바대로 은은하거나 여운이 있는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던 중 그 실패의 원인을 알게 됐다.
그것은 시주할 것이라곤 아기밖에 없다던 어느 마을 이름도 알 수 없는 어느 여인의 말이었다. 그 여인의 시주가 채워지지 않아 종이 종다운 소리를 이루어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 여인의 아기를 받아와 펄펄 끓는 쇳물에 던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종에서 엄마를 찾는 아기의 애절한 슬픔처럼 종소리가 에밀레, 울더라는 스토리텔링.
범종 제작에 아기를 공양한다는 이 비극적인 행위는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관점으로 볼 때 지극히 모순적이다.
이 이야기 속에도 대조적인 구도가 있다.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범종과 가난한 어느 마을 어느 여인의 아기.’
어느 하나가 완성되는 데는 그 공동체의 마지막 하나의 손길마저 닿아있어야 한다. 손길 하나 닿지 않을 때 그 빈자리 때문에 종은 완전해지지 못하며 그 풀잎만한 손길이 닿을 때 그 하나로 말미암아 비로서 종이 완전해진다는 채움과 그것을 비극적으로 형상화한 종.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미는 비극미라는 말이 있듯 성덕대왕신종은 그런 비극미를 통해 성스럽고 아름다운 ‘에밀레종’으로 다시 태어난다.
3.
이쯤에서 황룡사 9층 목탑 이야기로 또 들어가 보자.
17년 공사 끝에 황룡사가 완공되고 그 뒤 선덕여왕 14년 서기 645년에 자장율사의 이러저러한 건의에 의해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게 된다.
신라에서는 그 책임을 김용춘이 맡았다. 김용춘은 미추왕의 아들이며 장차 춘추 무열왕의 아버지 될 사람이다. 그는 9층 목탑을 지을 장인으로 백제의 아비를 선택한다. 신라는 많은 보물과 비단을 주고 아비를 데려온다.
그를 선택한 데에는 그가 백제 미륵사 9층 목탑을 지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근데 9층은 왜 9층인가. 9층은 신라와 갈등하는 주변 9개국을 상징하며 이들 국가를 부처님의 힘으로 누르기 위한 9층이다. 그 9층 속엔 물론 국경 확장과 요충지 점거를 위해 신라와 수없이 싸우는 백제(응유)와 고구려(예맥)도 있다.
그러고 보면 백제는 신라와 싸우는 적대국이며 아비는 적대국의 사람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9층 목탑을 짓는데 왜 하필이면 적국의 아비일까이다. 우리가 만약 원폭을 만들게 된다면 이미 원폭 기술을 가지고 있는 북한의 원폭 기술자를 초청할 수 있을까. 아무리 우리가 경제적으로 그들보다 월등히 우세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왜 신라에서는 가능했을까.
4.
나는 오래전, 어린 시절 우연히 삼국유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 속에 나오는 향가를 읽고 외는 일에 흥미를 느낀 적이 있었다. 그 후, 어찌어찌하여 아동문학을 하게 되었고 그때의 그 삼국유사를 버리지 못하여 <아동문예>의 한 자리를 얻어 ‘시로 읽는 삼국유사’를 연재한 적이 있다. 지금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내 블로그에 ‘젤로가 사라졌다’는 이야기 서사 동시를 쓰고 있다. 그러느라 다양한 삼국의 인물들을 살피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신라의 이야기에는 대조되는 독특한 스토리텔링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읽은 ‘웅장한 황룡사와 미천한 솔거’가 그렇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에밀레종과 이름 모를 어느 가난한 여인의 아기’라든가 ‘황룡사 9층 목탑과 적국의 장인 아비’가 그 좋은 예다.
모두 거대한 구조물이나 거대한 이념, 거대한 전체에 대응하는 하찮거나 보잘것없거나, 이름없거나 미약한 인물, 아니면 ‘우리’ 바깥에 있는 배타적 ‘타인’이다.
아무리 거대한 존재물도 미미한 것과 긴밀히 관계하며, 그 관계를 통해서 완성되거나 초월성을 얻게 된다는 장엄한 화엄의 세계가 그 배경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주 미약한 존재지만 그 하나가 채워질 때 비로소 세상이 완성되는 세계. 나와 너, 이것과 저것, 아국과 적국이라는 분별과 대립을 초월하는 이상세계가 신라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