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공부가 무서워요

권영상 2012. 8. 16. 17:46

 

 

 

공부가 무서워요

 

글 권영상 

 

지난해 4월쯤이다.

출근하여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선생님, 우리 애가 집을 나갔어요.”

진병이 엄마였다.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어제 점심 챙겨주고 일 나갔다 돌아와 보니 입던 속옷 새 것으로 갈아입고 나갔다는 거다.

 

진병이는 며칠 결석을 하고 있는 터였다.

“제 아이지만 배신감을 느껴요. 정말이지 애 못 키우겠어요.”

엄마는 진병이가 써놓고 나갔다는 편지 이야기를 했다.

‘나를 위해 엄마가 해주신 게 뭐가 있어요? 나는 엄마와 공부의 노예가 아니예요’ 라고 쓰여 있더라는 거다. 그 말을 듣는 나도 마음이 좀 심란했다. 자식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는 엄마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건 자식에게 전력투구하면 할수록 느끼는 감정이다. 괴롭더라도 며칠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조용히, 진병이가 공부를 무척 힘들어한다는 말씀도 드렸다.

 

그러자 진병이 엄마는 “지금 세상에 공부 안 하고 어떻게 사느냐”며 오히려 버럭 화를 냈다. 나는 반 아이들을 통해 진병이가 갈만한 곳을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자, 그간 진병이의 삐뚤어져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청소할 때면 늘 그가 사라지고 없었다. 대단찮은 다툼이긴 해도 다툼 속엔 그가 있었고, 교실 벽에 수십 군데의 신발자국을 낸 것도 그였다. 무엇보다 심심찮게 결석을 했다. 어떤 때는 배가 아파 못 왔다 하고, 또 어떤 때는 복통 때문에 못 왔다고 했다.

 

“엊그제 배 아파 결석했다면서 어제 또 배 아파 못 온 거니?”

그러면 진병이는 “어제는 배 아픈 게 아니고 복통 때문에 못 왔다고요” 그랬다.

언젠가 진병이에게 왜 자꾸 결석을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이렇게 저렇게 말을 둘러대던 진병이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선생님, 저 정말이지 공부하기 싫어요. 공부가 무서워요.”

그는 그간 참아온 말을 꺼냈다.

자신은 공부하는 머리가 아니라고 했다. 암만 마음잡고 공부하려 해도 재미를 못 느낀다는 말도 했다. 학교 공부도 싫은데 수업 마치면 바로 학원에 가서 밤 11시까지 종합반 수업을 듣고 온댔다. 그건 마치 죽음의 골짜기를 건너오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학원 가기 싫다고 엄마한테 몇 번 말해봤지만 막무가내신다는 거다.

 

그의 삶이란 게 어떨지 충분히 상상이 됐다.

손 씻으라면 손 씻고, 간식 먹으라면 간식 먹고, 숙제하라면 책상 앞에 앉아 숙제하는 시늉을 할 게 뻔했다. 게임하고 있으면 뭐가 되려고 게임이냐고 야단맞고, 식탁 위의 학원비 가져가라면 싫어도 가져가야 하는 그의 일과가 눈에 선했다.

그러니 진병이에게 제 삶이란 게 있을 리 없었다. 학원에 가고 오는 일조차 엄마는 휴대전화로 조종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어디 진병이만의 일일까. 진병이 또래라면 누구나 그렇다. 나는 그런 진병이를 알기에 그를 그리 닦달하지 않았다. 그 애 성미가 거칠지 않으니 다음 날이면 돌아오겠거니 했다.

 

그런 그가 20일이 지나서야 학교에 나왔다. 그때도 나는 그의 가출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진병이 왔구나” 하고 말았다. 근데 돌아온 그날부터 진병이는 달라도 크게 달라졌다.

손걸레를 빨아 들고 교실 탁자며 학급 문고함, 화분이 놓인 창턱이며 사물함 위를 반짝반짝 닦는 거였다. 제가 지은 죗값을 하느라 저러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해가 다 가도록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방과 후엔 학원 대신 운동장에 나가 해가 지도록 혼자 땀을 흘리며 축구를 했다.

 

“청소랑 축구하는 게 저한테 딱 맞아요. 이제는 학교 다니는 게 즐거워요.”

그러는 진병이 목소리에 윤기가 돌았다.

생각해 보면 진병이처럼 공부 잔소리에 시달리느라 자신의 삶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른의 강요에 못 이겨 학원을 전전하는 그들이 ‘공부의 노예’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실 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지』『구방아, 목욕 가자』『잘 커다오, 꽝꽝나무야』 등의 동시집과 『내 별에는 풍차가 있다』『둥글이 누나』 등의 동화집 30여 권을 냈다. MBC 동화대상, 세종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