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흥분하는 '오빤 강남스타일'

권영상 2012. 8. 15. 08:41

 

 

 

 

 

 

흥분하는 ‘오빤 강남스타일’

 

          권영상

 

 

 

“여보, 여기 와 이것 좀 봐봐!”

아내가 컴퓨터 앞으로 나를 불렀다.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덩치 큰 사내가 노래를 부르며 디뚝디뚝 춤을 추고 있다. 제대로 된 춤이며 노래라기보다는 장난끼 많은 길거리 막춤 같다.

“이게 뭔지 알어?”

고개를 젖는 내게 아내가 ‘강남 스타일’이라 한다.

“강남스타일이 뭔데? 개그야?”

원체 조롱섞인 가사다. 춤도 춤이라기 보다는 춤 아닌 성격이 진해 그렇게 물었다.

“가수 싸이 알지? 그 가수의 6집에 실린 신곡이야. 전국이 이 노래로 북적거리고 있대. CNN에서도 이 뮤직비디오가 방영되었다네.”

그래도 나는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 우리나라 사람 맞어?”

아내가 웃으며 싸이의 그 뮤직 비디오를 또 한번 보여준다.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그 말이 제일 먼저 귀에 들어온다. 간간히 들리는 “에에에 섹시 레이디.”, 그리고 “옵, 옵, 옵, 옵 옵빤 강남스타일.”이란 가사들도 반복하여 들린다. 노래 속엔 강남 스타일의 옵빠와 그의 섹시 레이디라는 여자가 있다. 어떻게 좀 놀아보자는 막돼먹은 옵빠의 겅중대며 꺼떡거리는 섹시한 춤과 노래다. 비디오가 끝나자 아내가 나를 돌아다 봤다.

 

“어때? 당신도 한번 추어봐!”

아내가 나를 보며 또 웃었다.

그 순간, 내 한 쪽 다리가 그 반복적인 리듬에 중독된 채 꺼덕대고 있었다.

“못 출 게 뭐 있어.”

나는 두 손을 들고 두 발을 겅정대며 ‘말춤’ 같지 않은 말춤을 추기 시작했다. 내 입에선 나도 모르게 “오빤 강남스타일,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이 튀어나왔다. 그냥 한번 웃겨보리라 했는데 아니었다. 몸은 자꾸 겅중대고, 입은 자꾸 “오빤 강남스타일”을 외쳤다. 아내도 즐거운지 뮤직 비디오를 연속적으로 튼다. 나는 바보 남편처럼 거실을 오가며 겅정겅정 춤을 추어댔다. 그러는 사이 내 방식의 ‘오빤 강남스타일’이 만들어졌다. 한참을 꺼떡거리다가 한숨을 내뱉으며 나는 거실바닥에 주저앉았다.

“싸이보다 낫네 뭐.”

손뼉을 치던 아내가 일어나더니 이번에는 내 흉내를 낸다. 그러면서 한참을 웃었다.

 

저녁에 아내가 슈퍼에 나간 틈을 타 ‘강남스타일’을 틀었다.

지하주차장에서 시작되는 이 노래의 배경이 체육관, 놀이공원, 버스, 마굿간, 목욕탕, 엘리베이터, 지하철, 변기, 해변가 파라솔 등으로 옮겨간다. 이런 장소들은 기존의 뮤직비디오들이 기피하는, 시시한 장소다. 노래의 품격이 전락될까 두려워하는 배경들이다. 춤은 어떤가? 우리가 알고 있는 돈 들여 뽑아낸 그런 춤이 아니다. 말춤이라 하지만 말춤을 빙자한 섹시한 춤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지만 나는 위대한 강남 스타일, 그쯤 알어! 뭐 그런 식의 같은 리듬이 반복되는 노래다. 노래라면 노래고 개그라면 춤개그다.

 

강한 제스처를 쓰면서 “오빤 강남 스타일, 강남스타일!”을 외치는 노래 속에는 ‘눈보라와 바람’에 저항하듯 뭔가 현실에 저항하는 욕망으로 가득차 있다. ‘강남’은 이들 세대에게 어떤 대상이었나? ‘강남불패’ 신화는 이들 3,40대의 학창시절을 괴롭혔던 독종같은 괴물이다. 이들은 강남이라는 특권, 그들만의 부와 권력을 바라보며 그 부조리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냈다.

어쩌면 그 분노가 기존 대중음악의 음악적 질서를 깨고 변종으로 출현한 게 이 ‘강남 스타일’일지 모른다. 잘 빠진 몸과 얼굴을 가진 기존의 소녀 그룹 가수들에 대한 도전장이라면 이것 또한 너무 과한 표현일까.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대중음악은 잘 만들어진 몸과 얼굴, 잘 만들어진 노래, 잘 만들어진 춤에 식상하며 여기까지 왔다. '강남 스타일'이 단번에 우리를 열광하게 한 원인을 이런 맥락에서 찾아보고 싶다. 잘 다듬어진 몸이 아닌 우락부락한 몸, 외국인 취향을 고려한 맞춤 노래이기 보다는 그냥 술집이나 회식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추는 즉석 춤, 뭔가 좀 어색한, 연습이 덜 된 듯한 자연스런 춤이 우리를 흥분하게 하는 게 아닐까.

 

이 노래에 빠져드는 다른 나라 실정도 마찬가지겠다. 잘 만들어진 기계문명에 식상해 아이폰을 불속에 집어던지며 ‘갈 때까지 가보자’,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하며 인류문명의 ‘제 6집’을 내놓을 때도 이와 같이 흥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