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이 내게 질문을 던지다
설악이 내게 질문을 던지다
권영상
설악을 찾았다.
인적을 피해 주중에 들어갔다. 설악산처럼 큰 산 속에 혼자 들어가 혼자 길을 찾아간다는 일은 짜릿하다. 설악산만한 우주. 그 속에 혼자 놓인 나는 불안하기도 하고, 또 외롭기도 하고, 그것이 자칫 인생 같기도 해서 좋다.
속초행 버스는 인제 백담사 정류장에 나를 내려주고 가버린다. 여기가 용대리. 이제부터 나는 혼자다. 멀지 않아 해가 질 시간. 버스를 길 속으로 보내고 나는 개울에 내려가 발을 씻은 뒤 황태국밥집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어둑어둑해진다. 해마다 머물던 민박집을 찾아나섰다. 주인도 점잖고 무엇보다 외딴집이라 조용히 밤을 보내기에 좋은 집이 그 집이다. 다리를 건너 옥수수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 불 켜진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웬지 낯설어 보였다. 없던 감나무가 마당에 있고, 집이 웅숭깊다. 번잡한 음식점 간판이 달려있다. 분명 내가 머물던 그 집 위치인데 그 집이 아니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그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도느라 6월 밤이 그만 깜깜해졌다.
다시 한길로 나왔다. 매표소 방향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을 때다.
“방 구하러 가시는거요?”
등불 아래 늙수레한 노인이 나를 불렀다.
숙박비를 묻고 더 늦기 전에 방에 들었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눕고 보니 영 잘못 든 집이다. 개구리들이 집을 에워싸고 나를 몰아낼 듯 울어댄다. 울어도 보통 우는 게 아니다. 술취한 개구리들처럼 게걸스럽게 운다. 그냥 있다간 개구리 울음 속으로 빨려들 것 같았다.
나는 주인장을 찾아뵙고 불만을 터뜨렸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네요.”
그러나 주인장은 나를 이해하려는 미덕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개구리 울음을 멈추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이런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게 고민이오. 어쨌거나 이 숙소는 손님이 선택하지 않았소?”
주인장의 말이 밉기는 했지만 나의 성급한 선택에도 문제는 있었다.
“어쨌거나 방은 바꾸어 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내일 마등령을 넘을 거니까 잠만은 충분히 자 두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선인들은 개구리 울음도 개구리가 노래부른다 했으니 좋은 노래 들으며 자는 셈 치시구려. 손님이 선택한 방은 언제나 좋은 방이지요. 안 그렇소?”
주인장은 능구렁이처럼 내 말을 얼버무리고는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가 잔 집은 컨테이너 박스였고, 삼면이 예상대로 모가 크는 무논이었다. 주인장을 찾았지만 주인장
은 없고, 안집도 잠겨있었다. 나는 매표소 근처에서 아침 식사를 때우고 산행 중에 먹을 김밥을 챙겼다.
마등령을 넘는 동안 선택 타령을 하던 민박집 주인장의 말이 떠올랐다.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것인가. 그 방을 선택하는 데는 한 순간이 필요했다. 독채에 환한 방. 깨끗한 이불.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좋아요, 하고 배낭을 벗었다. 그러나 그 한 순간의 잘못 된 선택으로 나는 개구리 우는 밤을 길게 보내야 했다.
순간 순간의 선택으로 나는 여기까지 한 생을 살아왔다. 내가 선택한 꿈이며 직업이며 아내며, 모두 고민은 있었지만 한 순간 이루어진 선택들이다. 그때 만약 지금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설악이 내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