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인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권영상
허룸한 바지에 청색 점퍼를 입을 사내가 산비탈을 파헤치고 있다. 무릎만치 파낸 흙속에 칡뿌리가 보인다. 그를 찾아온 이의 목소리에 사내가 고개를 든다. 얼핏 보아 60줄의 남자다. 국방색 벙거지 모자를 쓴 얼굴에 주름이 깊다.
“뭐 또 그 자연인이야?”
베란다에서 파 한 뿌리를 뽑아오던 아내가 텔레비전 앞을 지나며 한마디 한다. 응. 그렇게 대답하는 내 목소리에 감정이 실렸는지, ‘뭐 부러워서?’ 그런다. 나도 눈치쯤은 있다. 내 속을 감추기 위해 얼른 ‘저런 원시인 같은 사람도 있네’ 하고 보는 거지 뭐 한다.
도시에서만 살아 칡밖에 모른다는 사내는 산에서 6년을 지내고 있다. 마흔 나이에 뇌졸중에 걸린 아내를 입원시키고, 입원비를 대기 위해 잘 나가던 전동기 부속품 납품 사업을 정리해갈 때 아내는 기어이 떠나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산이라 했다.
칡을 캐던 산기슭엔 그가 기거하는 비닐하우스가 있다. 추위를 막기 위해 검정마포를 얹은 하우스 안은 생각보다 안온하다. 사업체를 정리할 때 가져온 캐비닛이며, 그 시절에 쓰던 이제는 세상과 너무 멀어져 아무 소용도 없는 전화기, 몇 권의 책과 손가방, 그리고 줄 하나가 끊어진 기타.
어설프게 만든 마루엔 담요가 포근하게 깔려있고, 아내를 살리기 위해 병원비를 빌리러 다니던, 이제는 예순일곱이 된 마흔 나이의 사내 사진이 놓여 있다.
곰보배추와 냉이를 캐어 무친 봄나물 반찬 하나와 된장찌개와 밥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사내가 웃는다. ‘봄이 오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해요’ 그런다. 그가 사는 이쪽 세상에서는 계절을 느끼는 일이 행복 축에 들지도 못한다. 그런 따위가 행복이었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우리 삶은 그리 고단하지도 팍팍하지도 않았을 것을.
그는 고적한 산속, 비닐로 얼기설기 만든 움막에 살고 있지만 행복해 보인다. 집 둘레엔 자신이 좋아하는 자두나무를 심었고, 볼품없어 보이는 연못이지만 물고기들이 봄 한낮처럼 유유히 놀고 있다. 사내는 산에서 떼어온 야생난 한 포기를 조롱박에 구멍을 내고 심으며 ‘나를 위해 나만의 시간을 쓰고 있는 거예요’ 그러며 웃는다.
‘나는 자연인이다’는 뻔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등장하는 자연인들의 삶 또한 사람만 다르지 그게 그거다. 잘 나가던 사람이 어느 날 닥쳐온 불행 앞에 좌절하다가 산을 찾는다. 산속 나물을 캐고 약초를 캐어 먹으며 닥쳐온 불행과 싸우면서 비로소 그게 행복이란 걸 알게 된다, 두고온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하는 뜨거운 눈물도 빼지 않고 한 줌 보여준다. 그런 뻔한 이야기인데도 채널을 돌리다가 ‘자연인’을 만나면 끝이 나도록 본다.
사내의 외로운 삶이 그리워서다. 남자들에겐 로빈슨 크루소가 있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무인도에 가 있다. 자신을 극한에 던져넣어 살아남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심리가 남자들에게 있다. 사내들이 죽을 게 뻔한 전쟁터로 총을 들고 달려가는 것도 바로 그런 심리 때문이다. 고생만 할 게 뻔한, ‘자연인’에 대한 그리움이 그래서 사내들에게 있다. 사내들은 그 일을 얼토당토않게 고결하다거나 숭고하다고 믿는다.
자연인은 선물로 가져간 옷을 받아 입고, 그 답례로 소중히 간직한 나무열매 효소 한 병을 보검처럼 내놓는다. 그리고 찾아간 이와 오래 작별하는 아쉬움에 빠진다. 그런데 무슨 까닭일까. 그가 마치 내가 되기나 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은. 내 마음 어디에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